맛있을 수밖에 없는 음식이 있다. 땀 흘리고 먹는 맥주, 남이 끓인 라면, 한밤중에 먹는 기름진 파전 같은 음식은 언제나 흥행이 보장된다. 야식의 기준은 누구나 다르겠지만, 치킨과 맥주, 곱창전골에 소주 같은 페어링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해가 지기 전부터 흰 와인, 빨간 와인, 거품 있는 와인까지 ‘때려먹은’ 날이었다. 배는 이미 불렀고, 무언가를 더 먹기에는 입맛이 영 없었다. 하지만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토종 한국인으로서, 음주의 마지막엔 꼭 얼큰하고 뜨거운 국물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너무 늦었으니 집에 들어가겠다는 일행을 구차하게 붙잡고“딱 한 잔만 더 하자”고 꼬드겼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중앙해장’은 무려 24시간, 연중무휴 영업한다. 아침이든 밤이든 새벽이든, 언제든 환하게 불을 밝히고 술꾼을 기다린다. ‘종업원의 입장에서 24시간 영업은 너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언제든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라는 염치없는 생각도 들었다. 매일 마장동 축산물시장에서 가져오는 소 부산물이 주요한 재료다. 해장국, 곱창전골, 내장탕, 곰탕 등이 메뉴다. 이미 장안에서 술 좀 마신다는 이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술집이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넓은 식당에는 술꾼이 가득했다. 곱창전골을 주문하고, 차가운 소주를 식전주로 마셨다. 와인으로 느끼해진 속을 씻어내는 듯했다. 시원하고 깔끔한 소주가 반가웠다. 커다란 솥 한가득 빨간 국물과 통통한 소 곱창, 갖은 채소가 담겨 나왔다. 한소끔 팔팔 끓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웠다. 입김을 휘휘 불어 급히 입속에 넣은 빨간 국물은 역시 제대로였다. 내장탕 특유의 잡냄새는 없었고, 적당히 맑고 진득한 국물이 입안에 착 달라붙었다. 길게 자른 곱창도 신선했다. 타이어를 씹는 것처럼 질겅거리지 않고, 쫀득한 젤리 같은 식감이 즐거웠다. 곱창을 씹을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육수 맛에 소주를 입안에 쏟아부었다.
이미 유명한 식당을 방문하는 건 어쩐지 단조롭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집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언제 술이 당길지 모르는 술꾼을 위한 최적의 공간이다.
백문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