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글씨로 연애편지 쓴 나
과거 유물 같지만 최근 다시 열풍
풍채·말·글·판단력은 인품의 4요소
글씨야말로 개선 여지 많아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손 글씨 세계
과거 유물 같지만 최근 다시 열풍
풍채·말·글·판단력은 인품의 4요소
글씨야말로 개선 여지 많아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손 글씨 세계
손 글씨를 써본 게 언제였던가? 학창 시절에는 당연히 필기가 일상이었다. 군대에서는 지금의 아내에게 연애편지를 많이도 썼다. 아마 다른 할 일이 딱히 없었기 때문인 것도 같다. 하지만 글씨를 잘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는 늘 수첩과 볼펜을 지니고 다녔다. 거리에서는 물론, 식사나 술자리에서도 수첩에 뭔가를 기록하는 일이 흔했다. 일분일초가 숨 막히는 취재 현장에서, 수첩의 글씨들은 본인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날아다녔다. 중요한 정보를 적어놓은 수첩을 펼쳐 놓고, 도저히 읽을 수가 없어 낭패에 빠진 일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퇴직한 이후에는 손에 펜을 쥐는 일 자체가 드물다.
손 글씨를 쓰는 행위 자체가 이미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린 시대다. 요즘은 대학생들도 필기를 하지 않고 노트북이나 태블릿 피시를 활용한다는데, 거꾸로 손 글씨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사람들이 있다. 바로 ‘캘리그래피’ 열풍이다.
캘리그래피(calligraphy)라는 말은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한 시인이자 소설가, 예술 평론가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름답다는 뜻의 그리스어 ‘칼로스’(kallos)와 그리다는 의미의 ‘그라페’(graphẽ)가 합쳐진 말이다. 아름답게 쓰고 그린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글씨도 시만큼 아름다워야 한다는 시인의 바람이 빚어낸 경지랄까. 영어로는 동양의 ‘서예’를 아예 캘리그래피라고 번역한다. 따지고 보면 옛사람들은 모두 캘리그래퍼가 아니었던가.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했다. 풍채, 말과 글, 그리고 판단력이 인품의 네 가지 요소라는 뜻이다. 이제 와서 성형 수술이라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기술도 여간해선 잘 늘지 않는다. 판단력? 사람의 깜냥이 어디 그리 쉽게 변하나. 하지만 글씨야말로 개선의 여지가 큰 분야다. 그 경지의 끝도 없겠지만, 비교적 적은 노력으로 지금보다 현저하게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선인들은 쓰고, 그리는 행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오랜 제주도 귀양에서 풀려난 추사 김정희는 ‘난 치는 법’을 배우겠다며 찾아온 석파(石坡) 이하응에게 조언한다. 석파가 바로 훗날의 흥선대원군이다. “난화는 비록 작은 기술에 불과하나 그 지극한 지경에 이르러서는 격물치지(格物致知·사물을 대하여 그 근본적 이치를 깨달음)의 공정에 다를 것이 없다.” 지필묵을 대하는 선생의 태도를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스승인 추사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석파는 나중에 난 그림의 대가로도 이름을 날리게 된다.
우리 모두 명필가가 될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에라도 종이와 펜만 있으면 도전할 수 있다. 어려움을 느끼면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배우면 된다. 단지 ‘예쁜 글씨’를 써보는 데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소중한 사람을 위한 선물이나 기념품을 직접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자신의 작품을 웹사이트에 등록해 판매할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다. 요즘 한국영화 포스터의 99%는 캘리그래피 작품을 활용한다고 한다. 영화 포스터뿐 아니라 각종 인쇄물과 광고, 뮤직비디오 등에서까지 캘리그래피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최근엔 태블릿 피시를 활용한 ‘디지털 캘리그래피’가 20~30대에겐 더 주목받고 있다. 바야흐로 손 글씨도 디지털 시대다.
봄이다. 바람이 불고, 꽃이 핀다. 당신이 한 땀 한 땀 흰 종이에 써 내려 가는 아름다운 글씨들은 어쩌면 그 봄을 닮았을지도 모른다.
글 송호균 객원기자 gothrough@naver.com,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