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시장에서 가져온 싱싱한 해산물로 요리하는 ‘방울과 꼬막 삼각지’의 안주들. 사진 백문영 제공
자주 가는 곳을 오히려 소홀하게 여길 때가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복판에 있는 ‘방울과 꼬막’은 그런 술집이었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 때도, “거기 메뉴는 내가 제일 잘 안다”고 큰소리쳤을 때도 있었다. 들쑥날쑥한 근무시간과 생활 반경과는 거리가 먼 탓에 한동안 발길을 끊기도 했다.
이런 ‘방울과 꼬막’이 변신했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1가에 3호점인 셈인 ‘방울과 꼬막 삼각지’를 연 것이다.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신상’이라는 점이 승부욕을 묘하게 자극했다.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3번 출구 바로 앞,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고깃집 골목 바로 앞에 있다. 옛날 초등학교를 연상하게 하는 시멘트 바닥, 배관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천장, 꼬막 삶는 냄비 뚜껑으로 만든 간판 등 모든 요소가 새롭고도 허름했다.
투박한 손 글씨로 적은 ‘오늘의 메뉴’, 은은히 흘러나오는 옛날 가요는 한남동 ‘방울과 꼬막’과 닮았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한남동의 젊은 패기는 그대로인데도 은근히 새어 나오는 고즈넉한 정서가 있었다. 앉자마자 커다란 대접에 한입 크기로 썬 오이, 쌈장, 삶은 달걀, 뜨끈한 콩나물국이 담겨 나온다. 기본 반찬만으로도 소주 한 병 안주가 됐다. 고급 일식집에서나 볼 수 있는 금태구이, 가자미구이, 갑오징어 회 같은 것도 이곳에서는 그저 소주 안주일 뿐이다. 매일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주인이 해산물을 가져오니까 그렇다.
금태구이, 차가운 제육, 아귀 지리와 참소라 숙회를 주문했다. 가게의 바로 앞은 대로변인데, 길만 나서면 바깥이 속초나 부산 어디쯤의 바닷가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차가운 소주 한 잔에 오이 한 점, 콩나물국 한 숟가락을 먹었다. 안주가 나오지 않아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비늘을 잘 살려 구운 슴슴한 금태 살을 집어 먹고, 아귀 지리의 시원한 국물도 떠먹었다. 소주 안주가 아니라, 그냥 음식이 소주 같았고 소주가 음식 같았다.
익숙한 식당의 새로운 매장을 방문했을 때, 장점보다 단점이 부각되는 경우도 많다. 익숙해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까다로운 방문자의 눈에 띄는 순간이 위험하다. ‘방울과 꼬막 삼각지’에서는 정반대의 경험을 했다. 새로운데 익숙했고, 친근하지만 생소했다. 한남동의 푸근하고 수더분한 정서에 삼각지의 옛 정서를 더한, 술꾼의 새로운 성지가 탄생했다.
백문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