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한 곳에서 자리를 지키는 항상성이야말로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나무처럼 가만히 있겠다”고 말하는 친구를 존경했었다. 하지만 항상 같은 기조와 태도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난 후 생각이 바뀌었다. 늘 가던 식당과 매일 가는 술집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서울에서 청담동은 늘 낯선 동네였다.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 바쁜 사람들, 높은 물가에 늘 움츠러들었다. “청담동에서 마음 편하게 와인을 마실 수 있는 바가 있다”는 친구의 말은 장난 같았다.
청담동의 ‘투 바이 투’를 방문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소주와 맥주로 달린 속은 헛헛했다. 술자리의 마지막은 시끄럽지 않은 곳에서 여유 있게 마시고 싶었다. 그때 생각난 곳이 예전에 스치듯 들렀던 ‘투 바이 투’였다.
일반적인 와인 바에 견줘 화려한 외관 때문에 처음에는 낯설었다. ‘생각보다 매우 비쌀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한편 ‘어디 한번 경험해 보자’는 호기로움도 생겼다. 하지만 내부는 달랐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적당한 조도, 적당한 테이블 간격, 나른한 분위기 등은 외국의 라운지 바나 도서관 같았다. 잡다하지 않고 깔끔하게 정리된 와인 목록, 샤르퀴트리(샤큐테리) 보드, 치즈 플레이트 같은 안주로 구성한 메뉴도 좋았다. 혼자 방문한 와인 바도, 혼자 마시는 와인 경험도 모두 처음이었지만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혼자 마시기에는 산미가 적당한 샴페인이 좋을 것 같다”고 소믈리에가 추천했는데, 그것도 마음에 들었다. 와인 수입을 겸하는 이곳은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 와인을 많다. 샴페인도 종류가 다양하다.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고 샤르퀴트리 보드에 있는 프로슈토를 집었다. 프로슈토의 짜고 자극적인 맛을 본 뒤 샴페인을 입안에 넣은 기분은 먹어본 사람만 안다. 이런 호사를 한 번쯤은 누려도 괜찮을 것 같았다. 와인 바라기에는 묘하게 정제된 분위기였다. 알고 보니 이곳이 추구하는 아이덴티티라고 한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카페로, 이후에는 와인 바로 운영한다는 소믈리에의 설명을 듣고 나니 이곳의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같은 건물에는 ‘소전서림’이라는 회원제 도서관도 있다. 회원이 아닌 이는 종일권(5만원)이나 반일권(3만원)을 구입해 이용할 수 있다.
새롭게 발견한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다른 면을 보는 즐거움은 크다. ‘투 바이 투’가 그런 곳이었다.
백문영 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