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른세살이 되던 생일 오후, 남편과 나는 옆 동네에 걸어서 집을 보러 갔다. 즉흥적으로 벌인 일이었다. 우리는 그때 세살이던 민지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둘이서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환한 낮에, 아이 없이, 천천히 점심을 먹는 게 내가 원한 생일 선물이었다. 메인 요리를 다 먹고 테이블이 치워졌을 때, 남편이 할 말이 있다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내가 어제 놀라운 집을 찾았어.”
위치를 듣자마자 나는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돼.
우리는 이사를 앞두고 집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지금 살고 있는 동네 안에서 옮길 생각이었다. 민지가 근처 어린이집에 막 적응을 마친 참이었기 때문이다. 조건은 분명했다. 도보로 어린이집에 등하원 할 수 있을 것! 하지만 이거다 싶은 전셋집이 나오지 않아 초조해지고 있었다. 새로운 어린이집으로 옮겨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냥 가볼 수는 있잖아. 나, 이 집 가보고 싶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집이야.”
남편이 말했다. 방 세개에 화장실이 무려 두개. 흥미롭긴 했다. 한 동짜리 아파트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름이 아파트였고, 리모델링을 했다고 쓰여 있었다. 그래, 보기만 하자. 재미 삼아, 구경삼아 가보는 거야. 나는 동의했다.
그는 부동산 정보를 게시한 공인중개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중개사는 사무실 밖에 있는 모양이었다. 당장은 안 되고 오후 세시에 만나자고 했다. 음료를 마시고 천천히 걸어가면 딱 좋을 시각이었다. 움직이면 등에 땀이 밸 정도로 볕이 좋은 4월이었다. 그와 나는 팔짱을 끼고 가로수 아래를 천천히 걸어가면서 곧 보게 될 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우리가 보러 가는 집─2층─의 전세금이 다른 층보다 훨씬 싸다고, 그 점이 좀 이상하다고 했다. 아파트는 6층까지 있었고 1층은 주차장이었다.
“무슨 문제 있는 집 아냐? 맨 아래층이라 그런가?”
내가 말했다. 그는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2층인데? 1층도 아니고. 집에서 누가 죽었나?”
이유는 곧 밝혀졌다. 우리는 건물 앞에서 공인중개사와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중개사를 따라 입구로 향했을 때, 빨강 승용차 한대가 올라오더니 주차장 문 앞에 섰다. 주차장 입구는 자동차 한대가 통과할 크기의 네모난 철문으로 막혀 있었다. 윙 소리가 나더니 조금 뒤 놀랄 만큼 큰 소리를 내며 문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닫혀 있을 때는 판판한 하나의 문처럼 보였던 것이 창문 블라인드 올라가듯 몇개의 조각으로 나뉘어 위로 말려 올라가자 그 안에 바닥이 반질반질한 넓은 주차장이 들여다보였다. 빨강 자동차가 그 속으로 들어갔다. 경사가 있어서 자동차는 작은 언덕을 넘는 것처럼 위로 솟았다가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굉음을 내며 철문이 아래로 내려왔고, 철컹, 무거운 소리와 함께 닫혔다. 금방이라도 문이 부서지거나 리프트 장치가 망가질 것만 같은 소리였다.
주차장 문 바로 위에 붙은 베란다, 그 베란다가 바로 우리가 볼 집이었다.
“소음도 소음이지만, 아무래도 겨울엔 다른 집보다 추워요.”
건물 안으로 앞장서 들어가면서 공인중개사가 말했다.
“내가 물어봤더니 난방비가 15만원 정도 나온다고 해요.”
그런데도 나와 남편은 그 집에 끌렸다. 햇살이 비치는 널찍한 거실. 수도꼭지까지 새것인 욕실과 주방. 이 가격으로 얻을 수 없는 집이었다. 아이가 뛰어도 무방한 집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콩콩 소리가 난다고 아래층에 있는 자동차들이 잠을 설친다거나 불평을 늘어놓지는 않을 테니까.
“게다가 엘리베이터도 있어!”
남편이 말했다. 당시 우리는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의 4층에 살고 있었다. 한 발짝을 떼면서도 벽과 천장을 가리키고 환호하다 “엄마 저것 봐! 저게 뭐야?” 비틀거리는 어린아이의 손을 움켜쥐고 수십개의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한다는 건 정말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아이고, 얼른 이사해요. 어떻게 살고 있어요.”
부동산 중개인이 말했다.
30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우리는 그 집에 세를 들기로 결정했다. 다 둘러본 다음 가벼운 흥분 상태로 현관을 나오는데, 들어갈 때는 신경 쓰이지 않던 것이 눈에 보였다. ㄱ자로 문을 마주한 옆집에서 짐을 쌓아둔 것이었다. 크고 작은 빈 화분들이 있었고, 녹슨 자전거가 무려 세대나 있었다.
“한 번 옆집 아저씨랑 마주친 적이 있는데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어요. 그동안 집이 비어 있었으니까 괜찮다고 놔뒀는지도 모르겠어요. 이사 올 때 다 치워달라고 좋게 얘기해요. 공용 공간에 이렇게 짐을 쌓아두면 안 되죠.”
부동산 중개인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말했다.
“만약 그래도 안 치우면 소방서에 신고하세요. 무단 적치물은 소방법 위반으로 걸려요. 나중에 이게 소방 활동에 지장을 주는 거거든요. 200만원까지 벌금 나오고 그래도 안 치우면 아마 3년 이하 징역일 거예요.”
“네? 뭘 그렇게까지….”
나는 실실 웃으며 중개인을 쳐다봤다. 그러자 중개인도 나를 보고 빙긋 웃더니 한숨을 쉬었다.
“왜요. 좋은 게 좋은 게 아니에요. 살면서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어야 돼요.”
그날의 일을 이렇게 사진 찍듯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그때의 행복감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그 이후 일어난 일들과의 낙차 때문일 것이다. 그날 오후 고요한 빈집 안에서 발소리를 내며 여기저기 거닐 때, 우리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슨 일이 다가오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그날 오후 우리는 행복했다. 살면서 만나는, 얼마 되지 않는 완벽하게 행복한 순간이었는데, 뜻밖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중개인마저 마음에 들었고, 누군가 그런 조언을 해주는 것이 반가웠다. 사람들이 모두 우리의 안녕을 바라고, 진정 어린 말을 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몇가지 협의를 하고 인사를 나눈 뒤, 중개인을 배웅했다. 다시 둘만 남은 그와 나는 길에 서서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산뜻한 색으로 칠해진 건물 앞면이 석양을 받고 있었다.
“이럴 수가!”
문득 정신이 돌아온 내가 말했다.
“이제 어린이집을 옮겨야 해! 그것만은 피하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말도 안 돼….”
그렇게 말한 뒤 그와 나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한 쪽씩 팔을 뻗어 손을 잡았다.
“어때? 그래도 최고의 생일 선물이지?”
남편이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 뒤면 우리가 이 건물에서 살게 된다는 게 너무 신기해.”
그때는 한 달 뒤 이사할 때 내가 혼자이리라는 걸, 꽤 오랫동안 늦은 밤 컴컴한 빈집에 혼자 들어가 불을 켜야 하리라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을까?
서른세 번째 생일이 있던 주가 지나고, 남편의 건강 검진 결과가 나왔다. 몇 년간 추적 관찰하던 췌장의 낭종이 갑자기 커져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직 낭종이었지만, 자리 잡은 위치와 생김새가 좋지 않다고 했다. 수술 이후 합병증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얼마나 오래 입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내 일은 바쁜 시기에 접어들었다. 날마다 야근을 했는데, 새벽 1시에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그런 야근이었다. 나와 남편은 민지를 고향에 계시는 내 부모님에게 보내기로 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당분간만, 바쁜 일이 끝날 때까지 한 달 정도만, 이라고 그때는 생각했다.
부모님의 집까지는 자동차로 세 시간을 꼬박 달려야 했다. 가는 동안 많은 터널을 지났는데, 민지는 터널이 나올 때마다 “터널이야!” 하고 외치며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터널이 자주 나타났다. 민지는 창문에 붙어 “아기 터널이야? 엄마 터널이야?” 물었고, 터널이 짧게 끝나면 눈을 빛내며 “아기 터널이야!” 하고 선언했다. 어둠이 길어지면 얼굴이 심각해졌지만, 멀리서 빛이 보이고 마침내 강렬한 햇볕 속으로 나오는 순간에는 그만큼 더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회사와 병원을 오가며 이사 준비를 했다. 전세 대출을 받고, 입주 청소 업체를 알아보고, 이사 업체를 알아보고, 예산을 확인하고, 일정을 조율했다. 이사란 순서를 지켜야 하는 크고 작은 일련의 일들로 이뤄져 있고, 그것들 모두 누군가의 손을 빌릴 수 없는 종류의 일이라는 걸 절절히 깨달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권리를 주장하기는커녕, 이 모든 일이 끝나기만을 빌었다.
이사하는 날, 엘리베이터 앞 화분과 자전거가 말끔히 치워져 있던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자전거 한대는 남아 있었지만, 한 무리의 소방대원들이 출동해도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 계단 난간에 바짝 묶여 있었다.
이른 아침 시작한 이사는 마지막 해가 남아 있던 오후에 끝났다. 사람들이 떠난 뒤, 나는 거실 바닥에 털썩 앉았다. 끝났구나. 안도감과 함께 슬픔이 밀려왔다. 겨우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로 이사했는데, 뛰어도 괜찮은 집으로 왔는데, 정작 민지는 먼 곳에 있었다.
멍하니 앉아 있는데, 가까운 곳에서 느닷없이 굉음이 들렸다. 바닥이 진동했다. 이게 대체 뭐지? 바깥에서 나는 소리인가? 의아해하던 사이 소음과 진동이 뚝 멈췄다. 그리고 일분 뒤, 다시 끔찍한 소리가 나면서 집이 울렸다. 주차장 문이었다. 맙소사…. 그 소리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끔찍하게 들렸다. 나는 바닥에 엎드려 울었다.
마침내 남편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회복하고 우리가 민지를 다시 데려온 건 깊은 가을이었다. 아이가 새집을 좋아할까? 집이 가까워지면서 슬슬 걱정이 되었다. 첫인상이 중요한데, 굉음에 놀라면 어쩌지? 남편이 주차장 입구에 차를 세웠다.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철문이 위부터 접히면서 말려 올라갔다.
“우와! 터널이야!”
민지가 소리쳤다.
“엄마, 아빠, 이것 봐! 터널이야!”
우리는 함께 웃었다. 자동차가 파도를 넘듯 경사를 타 넘었고, 곧 빛이 쏟아졌다.
김세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