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서 ‘아무 말 대잔치’담당인 아이의 뒷모습.
7살 꼬마와 함께 산다. 어릴 적 말이 느린 듯했던 아이는 두 돌이 지나고 폭포처럼 말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말을 통해 아이의 작은 우주가 드러났다. 그게 흥미로워서 그때부터 기록을 종종 했다.
세 단어 문장으로 말하던 시절, 아이는 반려묘와 식탁에 나란히 앉아 있다가 “붕~” 하며 방귀를 시원하게 뀌었다. 아이는 “야옹이 뿡 했네”라며 고양이에게 자신의 실수(?)를 뒤집어 씌웠다. 3살 아이도 정적을 깨는 방귀 소리는 민망했나 보다. 고양이, 의문의 1패.
3살 늦가을 등원 길, “바람이 불어서 나뭇잎이 툭툭 떨어졌어. (낙엽을 가리키며) 이케이케 떨어졌어. 그래서 나무가 아파.” 5살 어느 날, 깜깜한 밤중 한 줄기 빛이 거리에 아스라이 비치는 걸 보고선 “엄마, 해님이 집에 가다 말고 몸을 살짝 내밀었나 봐. 얼굴을 내밀었을까, 엉덩이를 내밀었을까.” 아이의 말은 모든 말이 동시다.
4살 어느 아침,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하는데 아이가 바닥에 크레파스로 낙서를 했다. 크게 혼낸 뒤 아이 마음을 도닥여주자 애잔한 말이 들렸다. “괜찮아 엄마, 그런데 소리는 지르지 마. 엄마 목이 아프잖아.” 네가 나보다 낫구나.
세상을 보는 아이의 시선이 재밌을 때도 있다. 6살 여름, 알록달록한 연등을 달아 화려한 조계사 앞을 지나며 “엄마, 여기 지금 서울이야?” (우리는 경기도에 산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서울은 멋진 곳이구나. 매일 파티를 하나 봐.”
머리가 굵어진 후로는 말문이 막히는 얘기도 했다. 5살 어느 겨울. 자꾸만 밤늦게 자는 아이에게 “○○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아침에 여유 있게 유치원 가지.” “음, 난 늦게 일어나서 바쁘게 가는 게 좋은데?”
그리고 얼마 전 어느 일요일 저녁. 주머니에 있던 동전을 탈탈 털어 돼지 저금통에 넣으라고 줬더니, 희한한 소리를 했다. “엄마, 내일 회사 가면 돈 벌어오지?” 다음 날 저녁 퇴근하고 돌아오자 “엄마~ 돈 가져 왔어?” 헐. 동전 넣는 게 재밌던 모양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