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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육즙 가득 만두 한 점, 이제야 마음 속에 부는 봄바람

등록 2020-04-09 09:39수정 2020-04-09 10:24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구복만두. 사진 백문영 제공
구복만두. 사진 백문영 제공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때가 있었다. ‘어차피 사회에서 만난 사람과는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사는 것이 아닌가!’ 지금 같은 절망적인 사태가 장기적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던 때였다.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를 마시고 술 마시고 밥 먹는 것 모두 친밀함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관계라는 것을 이제 안다. 그 길던 겨울이 가고 해는 길어졌고 나무에는 새잎이 돋고 꽃은 피었는데도 봄이 실감 나지 않는다. 시절이 무색하게 꽃은 만개했는데 ‘벚꽃엔딩’도 없고 봄의 한가로운 꽃놀이도 없으니까 왠지 서럽다.

쉬는 토요일과 노는 일요일에는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누군가를 불러내어 술과 음식을 먹자는 말도 쉽게 꺼내지 못하는 때라서 더 놀고 싶다. ‘혼자라도 돈이나 쓰자’는 방탕한 기분이 들었다. 습관에 가까운 무기력증을 해소하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마스크를 눌러 쓰고 지하철을 타고 지하철 숙대입구역으로 향했다. 혼자니 어디든 좋았다. 예전보다 지하철은 한산하고, 늘 줄 서던 식당도 인적이 드물었다. 평소라면 줄을 서야 하는 식당에 가보기로 결심했다.

만두로 일가를 이룬 ‘구복만두’는 30분 이상 줄 설 각오를 해야 하는 식당이다. 문 여는 시간에 맞춰 가 당당히 1번으로 입장하는 즐거움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들어가자마자 말했다. “샤오룽바오와 새우만두 달라.” 줄 서지 않고 들어와서일까, 혼자였지만 속절없이 즐거웠다. 샤오룽바오의 얇은 피를 찢어 뜨거운 육즙을 마시고 피 위에 생강 채를 얹어 입안에 넣었다. 가득 퍼지는 딤섬 소의 고소함과 쫀득한 만두피의 식감이 즐겁게 했다. 새우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새우만두는 새우찜을 먹는 듯 통통한 새우 살이 그대로 씹혔다. 한입 베어 물 때마다 새우에서 나오는 즙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이런 만두에 맥주 한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류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주인장의 슬픈 답변이 돌아왔다. 뜨거운 차 한 잔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또다시 샤오룽바오 한 점과 생강 채 가득 씹어 삼켰다.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운 나날들이지만, 그래도 먹고 마시는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 무기력에서 빠져나오면,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이럴 때일수록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주변 사람들도 살뜰히 챙겨야 힘이 생긴다. 시국이 어떠하든, 어떻게든 봄은 오고, 꽃은 핀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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