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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탱글탱글, 홀로 동해에서 맛본 물회

등록 2020-03-25 22:03수정 2020-03-26 02:55

‘동북횟집’. 사진 백문영 제공
‘동북횟집’. 사진 백문영 제공

소란스럽게 술을 마시고, 흐드러지게 취해 주정을 부리던 때가 그립다. 놀고먹어야 편안한 천성이라서 요즘 상황이 괴롭다. 결국 혼자서 어디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티엑스(KTX) 예매 어플리케이션을 클릭하고는 이리저리 살펴보다 문득 동해에 눈길이 갔다. 지난 2일부터 서울역~동해역까지 운행하는 케이티엑스 노선이 열렸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다. 망설일 것도 없었다. 따뜻한 점퍼와 발 편한 운동화만 걸치고는 서울역으로 향했다. 맥주 2캔을 비울 때쯤 동해에 닿았다. 서울에서 출발한 지 2시간40분만이다.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묵호항에 갔다. 갓 잡은 가자미·새우·고등어 같은 수산물이 쌓여 있는 풍경과 활기찬 어시장 경매를 보고 있자니 생경했다. 겨우 3시간 남짓인데 아주 먼 도시에 온 듯했다.

일정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것이야말로 혼자 하는 여행의 묘미다. 하지만 다양한 음식을 고루 맛볼 수 없다는 점에서 최악이다. 여러 명이 가면 마음껏 메뉴를 주문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모둠회’ 한상차림은 겁 많고 위가 작은 소심한 여행객인 나는 상상도 못 한다. 그래서 혼자서도 만끽할 수 있는 먹거리를 찾아 다녔다. 고생 끝에 발견한 곳이 묵호항의 ‘동북횟집’이다. ‘바닷가에서 흔히 보이는 그저 그런 식당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반, ‘그래도 혼자서 먹을 수 있는 물회가 있다’는 자기 위로가 반이었다.

이 집 물회의 첫인상은 특별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이와 깨 고명을 걷어내고 나니 이 식당의 진가가 보였다. 가자미, 오징어, 광어가 냉면 그릇 가득 수북했다. 육수를 붓지 않고 집어 든 가자미회는 고소하고 부드러웠다. 고급 일식집에서 먹었던 회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빨간 육수를 살짝 부었다. 참기름 향이 살짝 풍기는, 달지 않고 새콤한 육수와 고소하고 오독한 생선회가 무척 잘 어울렸다. 살얼음이 낀 차가운 육수에 뜨거운 밥을 말았다. 그릇 한쪽에는 차가운 회가, 다른 쪽에는 미지근한 밥이 놓였다. 육수를 잔뜩 머금은 탱글탱글한 쌀밥, 아삭하게 씹히는 오이와 배, 기름기 가득한 생선회, 차가운 소주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새파란 바다를 보면서 마시는 소주만으로도 기분이 좋은데, ‘궁극의 물회’까지 만나니 더할 나위 즐거웠다. “네가 신선이네!” 물회 사진을 본 친구의 말이다. 코로나19가 잦아들면 이곳을 함께 올 이들을 떠올렸다. 맛있는 것을 먹은 후 즐거워할 예쁜 얼굴들. 혼자서도 좋지만 이런 좋은 여행은 나눠야 제맛이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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