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일하는 세포>. 사진 넷플릭스 제공
코로나19 여파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확산하면서 집안에 발이 묶인 이가 많다. 감염 걱정 탓에 함부로 밖에 다니기도 어렵다. 자가격리나 재택근무가 허용된 직장인만이 아니다. 3월23일까지 초·중·고교 개학이 연기되면서 아이들과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학부모들도 처지가 비슷하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보자. 이 기간에 ‘시리즈 애니메이션’을 정주행해보면 어떨까? 넷플릭스, 왓차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이용하면 집에서 최신 명작부터 그 시절 추억의 애니메이션까지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시리즈 애니메이션은 드라마와 달리 1회가 20분 안팎이어서 전체 시리즈를 즐기는 데 부담도 한결 적다.
아무도 모르게 찾아온 감기 바이러스가 ‘기침’을 유발해 고요하던 내 안을 흔드는 때다. 기침은 사랑과 닮았다. 영화 <시월애>(2000년)에서 성현(이정재)과 사랑에 빠진 은주(전지연)는 세상에서 숨길 수 없는 세가지 가운데 둘을 ‘기침 그리고 사랑’이라고 꼽았다. 사랑이란 그렇게 우연처럼 기도 점막 앞에서도 찾아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일하는 세포>. 사진 넷플릭스 제공
▣
코로나19 잡는 훈남 ‘백혈구씨’
‘착하고 예쁘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신입직원 적혈구씨는 근무 첫날, ‘폐포’(산소와 이산화탄소가 교환되는 곳) 대합실에 들렀다가 무시무시한 폐렴구균과 마주친다. 이들 폐렴구균은 적혈구를 대량학살하려고 한다. 세포들이 사는 이 세계를 완전히 붕괴시키려는 것이다. 적혈구씨는 공포에 사로잡힌 채 소리친다. “나를 죽이려는 거야. 누가 좀 도와주세요!”
은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호중구과 소속 U-1146번’ 백혈구씨가 나타난다. 백혈구씨는 킬러 티(T)세포, 마크로파지 등과 함께 세균 제거 임무를 띤 특수요원. 백혈구씨는 ‘협막’(백혈구의 공격을 막는 세포벽 바깥층)을 펴고 저항하는 폐렴구균을 기관지 쪽 기도 점막으로 유인한 뒤, 번개처럼 칼을 휘둘러 결국 적을 해치운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적혈구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같은 세계에 살고 있으니 언젠가는.” 기도 점막 앞에 적혈구씨를 남기고 백혈구씨는 32조8000만개의 다른 세포들 사이로 아련하게 사라진다. 이후 적혈구씨와 백혈구씨는 폐렴구균을 비롯해 인플루엔자, 암세포, 출혈성쇼크 등을 이겨내고 사랑을 싹 틔운다.
동영상온라인서비스(OTT) 넷플릭스와 왓챠에서 볼 수 있는 <일하는 세포>(총 13부)는 일본에서만 온·오프라인 단행본 330만부가 팔려나간 만화 기반 애니메이션이다. ‘혈소판 어린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작품인 <일하는 혈소판>이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복잡하고 어려운 감염병 등을 과학적이면서, 재기발랄하게 풀어내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도 학습과 재미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애니메이션 <우주보다 먼 곳>. 사진 넷플릭스 제공
▣
아이와 함께 떠나는 ‘남극 여행’
3월23일까지 개학이 연기된 아이들과 함께 볼만한 <우주보다 먼 곳>(총 13부)같은 시리즈도 있다. 여고생 코부치자와 시라세는 3년 전 남극에서 관측대원으로 활동하다 행방불명된 엄마(타카코)의 흔적을 찾는다. 그는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며 민간 남극관측대에 합류하려고 한다. 겁도, 호기심도 많은 동급생 타카키 마리와 미야케 히나타가 ‘고교생 따위가 남극에 갈 수 있냐’는 편견과 싸우며 시라세와 남극행을 결정한다.
말도 안 되는 계획은 고교생 아이돌 시라이시 유즈키가 남극관측대 후원인 자격으로 이들을 데리고 가기로 하면서 현실이 된다. 시라세는 결국 엄마의 흔적을 찾는다. 유품인 노트북에서 지난 3년간 자신이 엄마한테 하루도 빠짐없이 보낸 1천여개 메일을 보며 눈물을 쏟아낸다. 제각각 마음 한쪽에 상처와 아픔을 가진 이들 고교생은 남극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면서 함께 성장한다. 주인공 타카키 마리의 말은 울림이 크다. “여행을 떠나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어. 내가 보고 있지 않아도 사람과 세상이 변한다는 것, 아무 의미 없는 하루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 집만의 향기가 있다는 것. 조금 무섭지만 반드시 할 수 있어.”
애니메이션 <우주보다 먼 곳>. 사진 넷플릭스 제공
2007년, 남극 쇼와기지에 초대받았던 일본인 우주비행사 모리 마모루가 “우주로 나가는 데는 몇분이면 되는데, 쇼와기지에 도착하려면 며칠이나 걸리네요. 우주보다 멀군요”라고 말한 데서 영화의 모티프를 가져왔다고 한다. 2018년 <뉴욕타임스>가 ‘나이와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는 감동적인 성장드라마다. 청소년들의 우정이 불안과 슬픔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잘 묘사했다’는 평가와 함께 ‘베스트 인터내셔널쇼 10’에 포함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붉은 돼지>. <한겨레> 자료 사진
▣
미야자키 하야오와 디즈니 명작들
시리즈물은 아니지만 오티티(OTT)에서 ‘명작 애니메이션’을 몰아보기를 할 수도 있다. 넷플릭스에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전성기 시절 작품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과 미국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 작품상 등을 휩쓸었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비롯해 어른과 아이들을 모두 행복하게 만들었던 <이웃집 토토로>, <천공의 성 라퓨타>, <붉은 돼지> 같은 명작들이 즐비하다.
왓챠에서는 1990~2000년대를 주름잡았던 극장용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1994년 작품으로 극장 매출로만 1조원대 흥행을 기록했던 <라이온 킹>을 비롯해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줬어”라는 명대사로 유명한 <미녀와 야수>, 그리고 <뮬란>, <인어 공주> 같은 영화들이다. 개봉한 지 20년 넘은 영화들도 있지만, 지금 아이들과 보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특히 영화의 주제곡인 엘튼 존의 ‘서클 오브 라이프’(라이온 킹), 셀린 디온의 ‘뷰티 앤드 더 비스트’(미녀와 야수), 스티비 원더의 ‘트루 투 유어 하트’(뮬란) 등의 노래는 귀마저 즐겁게 해준다.
▣
“아빠는 검정고무신 신었어?”
요즘 아이들의 엉뚱한 궁금증을 해소해줄 만한 추억의 국내 애니메이션도 많다. 극장 애니메이션이 흔치 않았던 엄마·아빠의 어린 시절,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이 그 자리를 메웠다. 이런 영화들을 함께 즐기면서 요즘 아이들에게 엄마와 아빠 시대의 삶을 에둘러 경험시켜 줄 수 있다.
<검정고무신>은 1960년대 서울, 3대가 모여 사는 기영이네 집의 가난하지만, 유쾌한 일상을 그렸다. 돈 5원을 받아 라면 심부름을 가던 기영이가 불쌍한 사람을 돕다가 결국 라면은 못 먹고 듣던 노래 ‘꼬불꼬불꼬불 꼬부랑국수 꼬부랑땡땡 꼬부랑땡땡~’의 추억이 묻어난다. 빙하를 타고 한강까지 떠내려온 둘리가 친구 또치, 도우너, 마이콜, 그리고 집주인 고길동과 좌충우돌 벌이는 모험을 다룬 <아기공룡 둘리>(총 13부)도 있다. 무려 1987년께 방영한 작품이다. 극 중에서 둘리가 참여한 밴드 ‘핵폭탄과 유도탄들’이 부르는 노래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좋은 라면!’(라면과 구공탄)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애니메이션 주제곡으로 회자된다. 이 밖에도 어려운 환경에서 역경을 딛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얘기를 그린 <천방지축 하니>와 <떠돌이 까치>, 백두산에서 태어난 배추 도사와 한라산에서 태어난 무 도사가 호랑이 담배 피우고 놀던 시절의 전래동화를 들려주는 <옛날 옛적에> 같은 텔레비전 애니메이션들이 추억을 소환한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OTT 이용법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을 집에서 버틸 요량이라면, 넷플릭스·왓차같은 대형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무료 맛보기 서비스’를 활용해볼 수 있다. 첫 이용자에 한해 넷플릭스는 한달, 왓챠는 2주간 동영상을 무제한 무료 이용할 수 있다. 해지는 언제든 ‘원할 때, 쿨하게, 한 번으로 끝’이다. 정식가입 땐 ‘공짜 기간은 묻고, 한 달 7900~1만4500원으로’ 간다. 특히 왓차는 코로나19로 불편함을 겪는 확진자와 자가격리자에게 한달짜리, 모든 일반 이용자에게 3일짜리 무료이용권도 제공하고 있다.
홍석재 기자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