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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사용자 친화적일 때 만인의 도구 된다”…단축키의 진짜 얘기

등록 2020-02-28 13:49수정 2020-02-28 13:56

라이프
우리가 자주 쓰는 컴퓨터 단축키 알고 봤더니
지난 17일 세상 떠난 ‘단축키’의 아버지 테슬러 덕분
전 세계 유저들 감사와 조의 표해
스티브 잡스와의 만남이 대중화의 초석이 돼
‘복사, 붙여넣기, 실행취소’ 단축키의 휴머니즘
주요 핵심 단축키 익히면 “나도 키보드의 달인”
컴퓨터에 처음으로 ‘복사하기, 붙이기’ 등의 기능을 도입해 컴퓨터의 대중화를 이끈 래리 테슬러. 사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컴퓨터에 처음으로 ‘복사하기, 붙이기’ 등의 기능을 도입해 컴퓨터의 대중화를 이끈 래리 테슬러. 사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지난주 전 세계 컴퓨터 사용자들 사이에서 잔잔한 추모의 물결이 일었다. 컴퓨터에 ‘자르기’(cut), ‘복사’(copy), ‘붙여넣기’(paste) 명령어를 처음 도입한 컴퓨터 개발자 래리 테슬러가 지난 17일 74살로 세상을 떠난 데 따른 추모였다.

많은 컴퓨터 이용자들이 “하루에도 수십번, 수백번 ‘복붙’(복사하기, 붙이기)을 쓴다. 일상의 편리함이 래리 테슬러 덕분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며 ‘Ctrl + C’(복사 단축키), ‘Ctrl + V’ (붙여넣기 단축키)로 감사와 조의를 표했다.

컴퓨터 사용자들이 당연한 기본 기능으로 여기는 주요 명령어들이 컴퓨터가 개발되던 초기부터 저절로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유래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깊이 의존하는 컴퓨터의 필수 기능이지만, 배경엔 개발자의 사려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테슬러가 컴퓨터 조작방법에 ‘자르기, 복사하기, 붙이기’를 할 수 있는 쉽고 단순한 기능을 설계한 덕분에 누구나 컴퓨터를 문턱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복사하기, 붙여넣기’ 기능이 존재하지 않던 초창기 컴퓨터는 전문가들도 다루기 어려운 도구였다. 수많은 컴퓨터 사용자들이 경의를 표한 배경이다.

‘복사하기, 붙여넣기’는 수시로 사용하는 컴퓨터 기능이지만 개발 배경엔 컴퓨터 역사의 흥미로운 장면이 있다. 테슬러는 1945년 미국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나 스탠포드대학을 졸업한 뒤 컴퓨터가 희소하던 1960년대 실리콘밸리에서 컴퓨터 연구를 시작해 1973년 제록스 팔로알토연구소(PARC)에 입사했다. 제록스 팔로알토연구소는 개인용 컴퓨터, 태블릿 피시(PC), 그래픽 사용자환경(GUI), 이더넷, 레이저 프린팅, 유비쿼터스 컴퓨팅 등 오늘날 중요한 정보기술 상당수가 처음 개발된, 컴퓨터 개발사에서 못자리 노릇을 한 민간 연구기관이다. 이 연구소에서 테슬러가 맡은 일은 초창기 컴퓨터의 조작 방법을 설계하는 일이었다. 테슬러는 누구나 컴퓨터를 손쉽게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정보 공유에 대한 신념을 갖고 컴퓨터에 ‘자르기, 복사하기, 붙여넣기, 잘라내기, 대체하기’ 등의 기능을 도입하고, ‘이용자 친화적’ 개념을 적용했다.

제록스 팔로알토연구소 시절의 래리 테슬러가 알토 컴퓨터 앞에서 작업 중이다. 사진 AP 연합뉴스
제록스 팔로알토연구소 시절의 래리 테슬러가 알토 컴퓨터 앞에서 작업 중이다. 사진 AP 연합뉴스

오늘날 이들 기능이 모든 컴퓨터에서 작동하는 보편적 메뉴가 된 출발점에는 래리 테슬러와 스티브 잡스의 운명적 만남이 있다. 스티브 잡스는 1979년 12월 제록스 팔로알토연구소(PARC)를 방문해 당시 개발 중이던 개인용 컴퓨터 알토와 그래픽 사용자환경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연구소가 개발한 이들 모델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매킨토시 개발에 적용하고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배경에 래리 테슬러가 있다. 제록스연구소 방문 당시 잡스에게 알토와 그래픽 사용자환경을 프레젠테이션해 그를 충격에 빠뜨린 사람이 바로 테슬러였다. 잡스는 이듬해인 1980년 테슬러를 애플로 스카우트했고, 테슬러는 애플에서 1997년까지 17년간 일하며 스티브 워즈니악에 이어 애플의 수석과학자를 지냈다. ‘복사, 붙여넣기’ 등 테슬러가 개발한 명령어는 1983년 애플컴퓨터가 출시한 리사 컴퓨터의 소프트웨어에 적용됐고 1984년 출시한 매킨토시에도 적용돼 보편적인 컴퓨터 조작법으로 자리 잡았다.

‘복사, 붙여넣기’에 비견될 정도로 컴퓨터 사용법에 혁신을 이룬 기능이 또 하나 있다. ‘실행 취소(되돌리기)’ 단축키다. 키보드 왼쪽 구석의 ‘Ctrl + Z’ 두 키를 함께 누르면, 직전에 내렸던 명령을 취소하고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실행 취소’ 단축키를 활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실제 엑셀, 워드프로세서, 웹브라우저 등에서 편집 메뉴를 통해 누구나 자주 이용하는 기능이다. ‘실행 취소’ 기능은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워런 타이틀맨이 1971년 개발했고, 1974년 제록스연구소의 문장편집기 브라보에서 채택해 키보드의 ‘Ctrl + Z’ 키에 할당함으로써 이후 문서 편집기의 주요 기능이 되었다. 실수로 지운 부분이나 잘못 입력한 부분이 있어도 이전 상태로 손쉽게 복구할 수 있는 기능 개발은 이후 컴퓨터 사용문화에 한 획을 그은 발명이 됐다. 향후 컴퓨터 이용자들이 마음 놓고 테스트를 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쉽게 되돌릴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하며 적극적인 사용과 실험문화를 촉진했기 때문이다.

‘복사, 붙여넣기, 되돌리기’ 단축키엔 편리함을 넘어 컴퓨터를 좀 더 인간적인 만인의 도구로 만들고자 한 설계자들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이번 기회에 유용한 컴퓨터 단축키 몇 가지를 알아보자. 단축키를 몰라도 마우스를 이용해 편집 메뉴로 가거나, 작업 표시줄을 이용하면 해당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단축키는 쓸 때마다 만족을 주는 일상의 시간 절약 도구로, 컴퓨터 달인들이 애용하는 지름길이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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