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허름한 곳에서 마음에 점을 찍듯 밥에 술 한 잔을 곁들여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를 지나 동대문시장 쪽으로 향하고 있던 날이었다. 햇살이 거리에 내려앉았지만, 1월 추위는 결코 만만하게 볼 게 아니었다. 초저녁 겨울은 어쩐지 쓸쓸하고 적막했다. 동대문시장 인근에는 상인들이 이용하는 저렴하고 푸짐한 밥집이 많다. ‘닭 한 마리’, 생선구이, 생선조림과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푸짐한 밥상은 부담스러웠다. 그러다가 ‘호와 초밥’을 발견했다. 원단과 부자재 가게 사이에 껴 있는 작은 초밥집의 정경은 어쩐지 생경했다. 흔히 말하는 고급 스시집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듯 외간은 허름하고 간판은 빛바랬다. 선뜻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다. 일행 중 한 명이 말했다. “경험 쌓는 셈 치고 들어가 보자.”
메뉴판은 정신 없었다. 초밥부터 회덮밥, 각종 회와 탕까지 고루 갖춘 ‘김밥천국’식 메뉴판이었다. 가짓수가 지나치게 많아서 ‘음식을 제대로 하는 집은 아닐 것이다’라는 쓸데없는 불신감마저 들었다. ‘호와초밥’과 ‘특초밥’을 주문했다. 고급 스시집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에 놀랐다. 초밥의 첫인상은 그저 평범했지만, 별 기대 없이 입안에 넣자 생각이 달라졌다. 산미를 강조한 듯 아주 새콤한 샤리(초밥 밥)와 바로 썰어 신선하고 차가운 회 맛이 절묘하게 잘 어우러졌다. 잡은 지 오래된 생선을 냉동했다가 해동시켜서 사용하는 저가의 초밥집과는 결이 달랐다.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어와 참치, 오징어, 새우 등 구색을 갖춘 것도 좋았다. 가격을 생각하면 고개가 더 끄덕여졌다.
기대 없이 먹은 음식이 기대치를 넘는 순간 들이닥치는 황홀함은 겪어보지 않은 이라면 알 수가 없다. 이 기쁨을 어쩔 수 없어서 따뜻한 청주 한 잔을 주문했다. 그리고 곁들일 차가운 소주 한 병도 주문해 마셨고, 쫀득하고 달달한 오징어 초밥도 집어 먹었다.
사람이든 식당이든, 예상 밖의 모습을 보여줄 때 흥미가 극도로 올라간다. 고급 식당에서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먹는 고급 요리를 즐길 때도 물론 즐겁다. 하지만 예상 가능한 쾌락이다. 예상 못 한 곳에서 만나는 의외의 음식이 주는 희열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하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