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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모든 걸 건 다카르랠리, 죽기 살기로 달렸다

등록 2020-01-31 14:27수정 2020-02-02 12:56

12일간 7800㎞ 내달린 류명걸 선수
모터바이크 부문 한국인 최초 참가·완주
‘0’에서 시작해 끝내 모든 걸 이뤄
모터바이크 인식 개선, 교육 이어갈 것
지난 1월12일 다카르랠리 7구간에서 사막을 질주하고 있는 류명걸 선수. 정주영 작가는 유럽보다 넓은 사막 한복판에서 류 선수를 만났다. 사진 정주영 제공
지난 1월12일 다카르랠리 7구간에서 사막을 질주하고 있는 류명걸 선수. 정주영 작가는 유럽보다 넓은 사막 한복판에서 류 선수를 만났다. 사진 정주영 제공

‘지옥의 랠리’. 1978년부터 열린 다카르랠리의 별명이다. 오지의 험로를 질주하는 도전가들이 모여든다. 세계 3대 모터스포츠 대회로 꼽히는 경주에 도전해 완주에 성공한 최초의 한국인이 있다. 류명걸 선수(39). 그를 ESC가 만났다.

지난 23일 오후 4시,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창고에 갔다. 황량한 곳이었다. 인기척이 나는 창고 문을 열자 “안녕하세요!”라며 그가 인사했다. 한국인 최초로 다카르랠리 모터바이크 부문에 참가해 12일간 7800㎞(12구간)를 달려 무사히 완주에 성공한 류명걸 선수다. 엄청난 경기를 완주한 선수답게 큼지막한 덩치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는 172㎝의 단단하고 날렵한 체구다. 다카르랠리는 완주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데, 류 선수는 모터바이크 부문 40위(경쟁 구간 기록 52시간 40분 52초)에 올랐다. 전체 구간 중 일부 구간(경쟁 구간)만 시간을 측정해 순위를 결정한다. 이제까지의 랠리 중 아시아 선수가 올린 최고 기록이다. 그는 랠리 여정을 단 한마디로 정리한다. “정말 죽기 살기로 달렸다!”

인터뷰 장소를 창고로 정했을 때 의아했다. “퇴직금, 전세금 털어서 마련한 이곳에서 2년 동안 먹고, 자고, 바이크 고치고, 체력 훈련하고 모든 걸 다했다.” 그는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아니다. 지난 2년뿐만 아니라 20년 전 모터바이크와 함께 하는 삶을 시작한 이래 꾸준하고 성실하게, 모든 자원을 끌어모아 실력을 쌓아 오늘에 이르렀다. 류명걸 선수, 그는 이제 한국 모터바이크계의 큰 나무다.

한국인 최초로 다카르랠리 모터바이크 부문을 완주한 류명걸 선수가 완주 기념 메달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 정주영 제공
한국인 최초로 다카르랠리 모터바이크 부문을 완주한 류명걸 선수가 완주 기념 메달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 정주영 제공

그가 찬사를 받을 수 있는 건 단지 모터바이크 랠리(장거리 경주)를 완주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개인 자격으로 참가해 ‘다카르랠리’를 완주했기 때문이다. 다카르랠리는 그 경로가 예측할 수 없는 험지여서 많은 참가자가 부상을 입고, 그중에 몇몇은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모터바이크나 차량의 파손으로 중도 포기(리타이어)를 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모터바이크 부문의 경우 완주 선수의 비율은 50% 안팎에 머물 때도 있다. 게다가 류 선수는 기업의 후원과 지원을 받는 ‘팩토리 팀’에 속하지 않은, 개인 참가자였다. “다카르랠리 참가를 결정하면서 목표는 딱 2개였다. 하나는 무사히 참가하는 것, 하나는 무사히 완주하는 것.(웃음)”

완주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랠리 초반 경로 이탈로 2시간이 넘는 페널티(벌칙 시간)를 받은 건 치명타였다. 엎친 데 겹쳤다. 앞서가던 참가자가 부상을 입었다. 다카르랠리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원칙’을 준수한다. 앞서가는 참가자가 부상을 당하면, 뒤따르는 선수는 도와야 한다. 다만, 도움을 주느라 소요된 시간은 주행 시간에서 제외한다. 류 선수는 이 원칙을 따랐다. 그러나 자신의 모터바이크에 달린 주행 기록기를 끄지 않았다. 도와준 시간도 주행 시간에 포함되어 버렸다. 또 30여분을 놓쳤다. 그러나 다음 구간부터 그는 날아다녔다. 시간 지체로 90등으로 출발했는데, 하루 만에 40여명의 참가자를 제쳤다. 류 선수의 후원 브랜드인 허스크바나의 고영석 마케팅팀장은 “이 구간 생중계를 볼 때는 아무것도 못 했다. 류 선수 기록이 나올 때마다 환호성이 터졌다. 정말 짜릿하고 감동적이었다”라고 말했다. 완주한 선수들이 오르는 무대 위에 그는 모래 먼지를 뒤집어쓴 채 환호하며 태극기를 펼쳤다. 이때의 심정을 묻자 류 선수는 “솔직히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잘 끝나서 다행이고 좋았지만, 덤덤했다”라고 말했다.

분초를 다투는 상황이지만 사막 한복판에서 만난 정주영 작가가 반가워 그 앞에서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준 류명걸 선수. 사진 정주영 제공
분초를 다투는 상황이지만 사막 한복판에서 만난 정주영 작가가 반가워 그 앞에서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준 류명걸 선수. 사진 정주영 제공

무사히 목표를 달성한 류 선수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준비 과정은 결코 담담하게 이어갈 수 없는 이야기였다. 죽지 않고 완주하기 위해 기울인 그의 노력을 듣자면 말이다. “하루에 15시간을 달려야 할 때도 있다.” 이번 2020 다카르랠리에서 가장 긴 구간인 ‘스테이지 9’은 886km에 이른다.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하고 다시 서울에서 대구를 가는 셈이다. 중요한 건 일반 도로가 아니라는 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이번 다카르랠리는 전 구간의 70% 이상이 사막 지형이었다. 그는 1주일에 5일을 체력 훈련, 2일을 주행 훈련에 투자했다. “사막에서 열리는 랠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판단력이다. 체력이 떨어지면 집중력도 떨어지면서 옳은 판단을 하기 어렵다. 극한의 환경에서 달릴수록 체력이 기록을 좌우한다.” 모터바이크 주행 훈련은 더 극단적이다. “2분 정도 되는 오프로드(비포장) 코스를 100번을 돌았다. 가장 기본적인 연습을 가장 지루하게 가장 오래 했다. 한계점을 조금씩 높여갔다. 그래야 랠리 중 훈련한 상황이 오면 머리를 쓰지 않고,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방법으로 헤쳐 나간다.” 그는 또 “대변을 경기 시작 전 보는 것도 훈련해야 했다. 중간에 생리 현상 때문에 옷 벗고 다시 입고 출발하면 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3~4분을 까먹는다. 일부 선수는 소변 줄을 달고 다니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다카르랠리 도중 류명걸 선수를 만난 정주영 감독이 그를 응원하기 위해 태극기를 펼쳐 들었다. 사진 파올로 라니에리 제공
다카르랠리 도중 류명걸 선수를 만난 정주영 감독이 그를 응원하기 위해 태극기를 펼쳐 들었다. 사진 파올로 라니에리 제공

류 선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가 완주하기 위해 모든 걸 쏟았을 테다. 류 선수의 팀인 류27(RYU27)이 다카르랠리 도중 올린 사진 한장이 떠올랐다. 류 선수의 심박 수 그래프가 나오는 시계 사진이었다. 류 선수의 심장이 랠리 중 터질 듯이 뛰고 있는 걸 보여줬다. 류 선수에게 이번 다카르랠리에서 가장 긴장하고 힘들었던 순간을 물었다.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참가자 포르투갈 선수 파울로 곤칼베스가 7구간에서 사고 뒤 심정지로 사망했다. 주최 측은 구간의 위험 사항을 매일 알려준다. 참가자들이 최고의 안전을 도모하고, 보호 장구를 착용하는 건 말할 것 없다. 결국 이 사고 뒤 하루 경기를 쉬고 추모의 날을 보냈다. 남의 일이 아니고,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다카르랠리 도전을 위해 나고 자란 사람 같지만, 류 선수의 꿈은 소박했다. “20년 전 모터바이크 정비를 하기로 마음먹고, 나중에 작은 오토바이 가게를 하는 게 목표였다. 다카르랠리? 꿈도 안 꿨다.(웃음)” 좋아하는 모터바이크를 타며, 모터바이크 수입·유통업체에서 정비사로 일했다. 마지막 직장인 모터바이크 브랜드 케이티엠(KTM)에서는 꼭 10년을 보냈다. “2011년부터 국외 랠리에 참가했다. 몽골랠리를 주로 나갔는데, 거기도 참가하고 다카르랠리에도 참가한 선수들 기록을 살폈더니 나도 할 수 있겠더라. 2017년 몽골랠리에 참가해 우승하고 난 뒤 결심했다. 내가 좋아하는 모터바이크로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도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다카르랠리에 나가겠다고 주변에 말하자, 우스갯소리로 여기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저러다 말겠지’, ‘거길 어디라고 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도전을 멈출 순 없었다.

사막 지대라고 해서 모래만 있는 건 아니다. 돌밭 사이를 시속 100km 이상으로 질주해야 다카르 랠리 모터바이크 부문 상위권에 들 수 있다. 사진 정주영 제공
사막 지대라고 해서 모래만 있는 건 아니다. 돌밭 사이를 시속 100km 이상으로 질주해야 다카르 랠리 모터바이크 부문 상위권에 들 수 있다. 사진 정주영 제공

류 선수의 문제는 정작 실력이 아니라 자원이었다. “출발 전날까지 참가 못할까 봐 초조했다. 다카르랠리에 참가한 선수들 등 번호를 보면, 112, 113, 114 이렇게 가다 116, 117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115번 선수는 참가비 등을 못 내 출전을 포기한 사람이다.” 류 선수의 곁에서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도맡았던 정주영 류27 감독은 “다카르랠리 참가비만 1억7천만원이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개인 자격으로 도와준 분들이 계셨지만, 정말 부족했다. 백방으로 뛰었다. 모터바이크 브랜드 허스크바나, 헬멧 전문기업 에이치제이시(HJC), 처갓집양념치킨 등 기업의 고마운 후원을 따냈지만, 여전히 부족했다”라고 말했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모터스포츠대회에서 포디움에 오른 류명걸 선수와 프로젝트 총 감독을 맡았던 정주영 작가. 사진 최현남 제공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모터스포츠대회에서 포디움에 오른 류명걸 선수와 프로젝트 총 감독을 맡았던 정주영 작가. 사진 최현남 제공

정주영 감독은 자신의 작품을 팔았다. 그는 비행기 전문 사진작가다. 비행기 사진 전시회를 열고, 작품을 팔아 류 선수의 참가비에 보탰다. “류 선수가 자신과 같이 다니면 비행기 사진 많이 찍을 수 있다고 꾀더라.(웃음) 사진가 입장에서 류 선수는 바이크를 정말 멋지게 탄다. 나만 보기가 정말 아까웠다. 그렇게 시작한 게 이렇게 아름다운 도전이 됐다.” 이들의 도전에 불을 지핀 사람이 또 있다. 류 선수는 “멕시코 바하랠리에 나가 경험해보면 좋을 거라고 조언한 분이 있다. 박우진 광주과학기술원 생명과학부 교수다. 박 교수님은 사비를 들여 바하랠리에 동행해 통역 등을 맡아주기도 했다. 많은 우연과 인연, 도움으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그의 도전은 다카르랠리 완주에서 멈추지 않는다. 더 어려운 도전에 나선다. 바로 한국 모터바이크 문화에 대한 인식 개선과 올바른 운전자 교육이다. 국내 모터바이크 역사는 짧지 않지만, 그 문화는 낙후한 편이라는 게 류 선수의 생각이다. “많은 랠리에 참가한 경험을 담아 교재나 책을 만들고 싶다. 낙후한 한국의 모터바이크 교통 문화 개선이나 운전자 주행 교육에 힘쓰려고 한다.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사회적 책임, 의무라는 말이 무겁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거니까.”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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