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 문화 공간’이라는 말이 요즘 흔해졌다. 하지만 불과 3~4년 전만 해도 낯선 말이었다. 식당에서는 식사만, 바에서는 음주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 양상이 달라졌다. 한 공간에서 음주도, 식사도 한다. 각종 클래스와 파티까지도 할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 한 자리에서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하는 것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이런 공간 대부분은 새롭고 신기한 경험을 제공한다. ‘플라워 진’도 그런 곳이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경리단길 초입, 맥주로 유명한 ‘맥파이’, ‘더 부스’ 그리고 ‘우리 슈퍼’로 들어가는 그 골목 들머리에 있다. 경리단길이 요란하게 뜨고 지기를 계속하는 동안 조용히 한 자리를 지켜온 곳이다. 짙은 회색으로 칠한 다소 어두운 외관과 좁은 입구 때문에 매일 지나다니는 이도 잘 모르는 곳이다.
무더위가 두렵던 어느 날 오후였다. “낮에 맥주나 한잔 하자”는 친구의 말에 “가벼운 칵테일부터 시작하자”고 응수했다. “세상 어떤 바가 대낮부터 문을 여냐”는 핀잔을 들었지만, 그런 말을 한 친구를 끌고 플라워 진에 갔다. 들어가자마자 풍겨 오는 향긋한 꽃 냄새와 가득한 꽃은 이곳이 꽃집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려줬다. 진짜로 꽃을 판매하는 플라워 숍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서 칵테일을 판다고? 과연 제대로 된 칵테일이 나올까?
플라워 진의 메뉴는 단출하다. 오직 ‘헨드릭스 진’만을 사용한 진 토닉, 진피즈 등을 판매한다. 플라워 숍이기에 다채로운 허브를 사용한, 풍미 깊은 칵테일이 대부분이다. 헨드릭스 진에 오이를 얇게 슬라이스 해 넣은 ‘헨드릭스 진 토닉’을 주문했다. 주문과 동시에 오이를 슬라이스하고 진과 잘 어울리는 작은 장미꽃까지 얹은 모양새가 로맨틱하다. 유리잔 한가득 나온 진 토닉은 청량하고 가볍고 시원했다. 여름에 누구나 마셔야 할, 그런 맛이었다. 은은한 진의 향과 사방에서 밀려오는 꽃향기에 정신까지 아찔했다. 칵테일에 ‘한 잔만’이라는 개념은 없으니 진피즈로, 진 마티니로 점점 알코올 도수를 높여 가며 실컷 마셨다.
여름에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있고, 여름이라 더 좋은 맛이 있다. 맥주도 좋지만, 가벼운 칵테일도 더운 날씨에 나쁘지 않다. 어두컴컴한 지하 바에서 마시는 칵테일이나 야밤에 즐기는 칵테일도 운치 있지만, 하늘빛 좋은 여름날에는 낮에 마시는 칵테일이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