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날이 이어질 때마다 그리운 음식은 아이러니하게도 집밥이다. 식당에 쓸데없이 늘어놓기만 한, 구색 맞추기 반찬도 지겹다. 단순하지만 막상 만들려면 어려운 것이 반찬이다.
바쁜 점심시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미칠 듯한 허기가 몰려왔다. ‘집에 가서 밥을 먹고 나올까’ 생각하다가 떠오른 곳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풍류 자희향’이다. 운현궁에서 낙원상가로 이어지는 인사동 뒷골목에 숨어있는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숨은 강자’라는 말이 떠올랐다. ‘술 좀 마셨다’는 사람 중 자희향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다. 나비 축제와 돼지고기가 유명한 전라남도 함평군에 있는 양조장이다. 이 식당은 그 양조장의 이름을 따 만들었다. 술 빚는 이들이 만든 음식이라면 먹어 보지 않아도 그 맛을 짐작할 수 있다.
참굴비 구이, 코다리찜, 홍어삼합, 홍어전, 쌈밥, 돌게장 등 20여 종 음식이 경쟁하듯 메뉴판에 빽빽하다. “세 명이면 쌈밥 2인분과 돌게장을 시키라”는 노영희 대표의 말을 믿고 주문하니 반찬이 바로 등장했다. 파래무침, 부지깽이 나물 무침, 무생채, 버섯볶음 등 집 반찬 같은 음식들이다. 마구 집어 먹었다. 배추와 상추는 물론, 삶은 양배추와 참나물까지 한 소쿠리 가득하고 견과류를 넣어 만든 구수한 쌈장은 화룡점정이다. 쌈밥과 함께 나오는 빨간 제육볶음과 고소한 청국장도 별미다. 돌게장은 짜지 않은데 싱겁지도 않았다. 오독오독 씹으며 흰 쌀밥과 먹었다. 구수하고 짭조름하고 단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함평 양조장에서 지난주에 만들어 갖다 놓은 찹쌀막걸리도 주문했다. “우리 음식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우리 술이다”는 명언을 일행에게 외치며 한 잔 마시고, 청국장 국물을 떠먹고, 쌈에 싼 제육볶음을 우걱우걱 집어삼켰다. 탁주를 다 비워갈 무렵에 ‘자희향은 원래 청주로 유명하다’는 일행의 권유를 못 이기는 척하면서 양조장 자희향에서 만든 국화주를 주문했다.
생각보다 고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집밥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배가 고프면 언제든 떠먹을 수 있었던 따끈한 밥통 속의 밥, 냉장고만 열면 주르륵 줄 맞춰 서 있는 반찬 통들을 보는 것도 호사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족을 돌보듯 주방에는 엄마가 늘 있었다. 그 흔한 반찬 통 하나에도, 밥 짓기에도 누군가의 노력이 필요했다는 것을 어리석게도 이제야 알았다. 집 밖에서 집 밥을 먹으면서, 오늘도 취한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