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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다방에서 우리 술 건배!

등록 2019-01-31 09:18수정 2019-01-31 09:21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술다방 실내. 사진 백문영 제공
술다방 실내. 사진 백문영 제공

서울 을지로가 뜨고 있다는 소리는 오래전부터 들린 얘기다. 최근엔 논란도 많았다. 을지로에 있는 한 평양냉면 노포의 철거 여부가 논란의 중심이었다. 그만큼 을지로의 식당들은 서울 사람에게, 과장하자면 한국인에게 특별한 의미다. 오늘도 어김없이 을지로로 향한다. 거만하게 사냥감을 찾는다. 200번은 지나간 듯한 을지오비베어, 원조녹두가 있는 골목을 걷다 발견한 곳이 ‘술다방’이다.

타일 파는 집과 철물점이 있는 을지로의 왁자지껄한 풍광에서 술다방을 찾기는 결코 쉽지 않다. 찾아가는 여정은 고되고 이 집은 간판조차 걸려 있지 않다. 이미 이곳을 다녀온 친구들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찾는 것조차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호수 커피맥주’ 간판이 한 철물점 건물 2층에 있는 술다방을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표식이다. 이 불친절한 술집에 사람들이 왜 몰릴까 하는 의구심을 품고 낡은 계단을 올라갔다. 을지로에서 30여년간 영업했던 커피숍 ‘호수 커피숍’ 공간 그대로를 살린 술집이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레트로’와 ‘뉴트로’가 트렌드의 중심으로 떠오른 지금, 그다지 새로운 형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섣불리 판단했던 탓이었다.

술다방의 내부는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다. 예상보다 훨씬 널찍한 공간, 바 테이블이 쭉 뻗어 있는 시원한 구조, 그 옛날 다방 의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의외성 등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옛날의 고전적이고 촌스러운 가구에 지금 가장 동시대적인 요소를 구석구석에 심어 놓은 모양새가 야무지기까지 했다. 이곳은 전통주 전문 바다. 을지로에서 칵테일을 마실 수 있다는 것도 신선한데, 요즘 인기 상승 중인 전통주를 전문으로 파는 바라고 하니 구미가 당겼다. 매월 바뀌는 ‘이달의 추천 술’부터 ‘탁약주 샘플러’, ‘소주 샘플러’까지 우리 술을 접해보지 못한 이도, 우리 술을 애호하는 이도 모두 즐길 수 있는 메뉴가 많다. 안동소주, 감홍로, 삼해소주 등 쉽게 만날 수 없는 증류주를 잔술로 마실 수 있다. 미인탁주, 문희 등 진한 원주도 반병으로 마실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술다방. 사진 백문영 제공
술다방. 사진 백문영 제공

‘바에 왔으면 첫 잔은 칵테일이다!’라고 결정하고 칵테일 차림표를 펼쳤다. 하지만 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칵테일 메뉴는 없었다. ‘다홍치마’, ‘술다방 마티니’, ‘상록수’ 등 이름만 보아서는 무슨 맛인지,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칵테일만 그득했다. 다홍치마와 술다방 마티니를 주문했다. 은은한 연기 향이 매력적인 제주도 고소리술에 자몽 향을 입힌 다홍치마는 이름만큼이나 맛도 알록달록하고, 삼해소주와 증류 소주 모월을 섞어 만든 술다방 마티니는 마시는 순간 머리끝까지 진한 알코올이 튀어 올랐다.

우리 술이라고 늘 얌전하고 점잖게 마실 필요가 있을까? 보드카와 진만큼 무겁게, 맥주처럼 가볍고 즐겁게 마실 수도 있는 것이 우리 술이다. 어차피 즐겁기 위해 마시는 술 아닌가? 술다방은 우리 술을 제대로, 즐겁게 마실 수 있는 놀이터다. 우리 술의 진짜 맛을 제대로 아는 주인이 있는 덕이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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