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식당 ‘주지육림’.
‘서울 강남에는 제대로 먹고 마실 만한 곳이 없다’고 토로하던 때가 있었다. 한남동을 기점으로 을지로 3가, 종로까지 온 서울을 휘저으며 다녔다. ‘이것이 진짜 서울이다’라고 느낄 수 있는 편안하고 푸근한 분위기야말로 강북의 특권이자 혜택이다.
마침 강남에 약속이 잡힌 날이었다. 수십 번을 지나다녔던 논현동 골목에서 길을 잃었다. 날씨는 차가웠다. 절반은 망연한 상태에서, 절반은 투덜거리며 세상을 탓하고 있었다. 함께 걷던 친구가 자신이 아는 곳으로 가자면서 이끈 곳은 도산대로 사거리 인근에 있는 ‘주지육림’이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는 책망은 그에게 통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나만 아는 소중한 곳’이 있게 마련이니까.
다소 노골적인 상호와 평범해 보이는 간판이 번화한 강남 한복판에서 낯설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들머리에 들어서자마자 기분이 무척 편안해졌다. ‘굴 돼지 보쌈’, ‘한방 돼지 보쌈’ 등 보쌈을 기본 메뉴로 ‘키조개 관자 가지볶음’, ‘돼지 김치찌개’까지 술 마시기 좋은 다채로운 한식 메뉴가 돋보였다. ‘비빔 파스타’, ‘꽃게 강정’ 등 일반적인 한식 술집에서 보기 힘든 음식도 있었다. 이유는 뭘까? 와인 잔과 다채로운 와인 목록은 다 뭘까?
와인 목록 뒤에는 소주 브랜드 ‘한라산’을 비롯한 여러 가지 소주, 맥주와 한국 와인까지 적혀있었다. ‘한방 돼지 보쌈’을 주문했더니 “다소 기름진 돼지고기와 스페인의 화이트와인이 잘 어울린다”는 김소희 소믈리에의 설명이 이어졌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고기와 술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말과 상호가 일치한다고 느꼈던 것은 기분 탓일까? 고기가 식지 않도록 접시 밑에 작은 양초를 켜 두는 꼼꼼함, 정성껏 추천한 와인, 소믈리에의 섬세한 서비스 등이 마음에 들었다. 명이나물에 싼 돼지고기 한 점, 아삭한 보쌈한 점, 숙주나물 볶음 한입을 먹고 와인을 마시다 보면 마음은 편안해진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이든 사실은 별 상관이 없다. 나 자신을 지킬 수 있고 내가 편안한 곳이면 그 어디라도 괜찮다.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기대 이상의 것을 만나는 일은 마음이 통하는 새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낯설지만 반갑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