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외로 세상을 배웠다.
과외를 많이 받았다는 것은 아니고, 많이 했다는 얘기다. 하고 싶어서 한 것은 아니다. 안 하면 대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했다. 거리가 멀거나, 과외비가 적어도 가리지 않았다. 학생의 집까지 순수하게 한 시간 반 이상을 가야 하는 때도 있었다. 보통 하루에 두 개씩 했기에 밥을 먹을 시간이 없어 이동하며 과자로 때우는 경우도 많았다. 덕분에 미팅하거나 클럽을 가본 적이 없다. 엠티(MT) 역시 신입생 때 한 번 가봤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조금 아쉽다. 하지만 말했듯 나는 과외로 세상을 배웠다. 대단할 것은 없지만 그걸 위안으로 삼는다.
대개는 평범한 가정이었다. 미로 같은 골목 속 다세대 주택에 들어서 인터폰을 누른다.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이 문을 연다. 부모님은 맞벌이인 경우가 많았다. 물만 마시고 앉아 과외를 한다. 학생은 평범하다. 평범하게 배우고, 까먹는다. 평범하게 졸고, 떠든다. 여자 학생들은 연예인에 관심이 많았고, 남자 학생들은 게임을 좋아했다. 한 달 내내 수업을 해도 부모님의 모습은 좀체 보기 힘들었다. 맞벌이일 때가 많았고, 이혼하거나 사별을 한 경우도 있었다. 학생이 건넨 봉투에 담긴 과외비를 받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가족끼리 함께하는 때는 잠 잘 때뿐일까’
간혹 부유한 집안도 있었다. 대단지 아파트에 들어서 인터폰을 누르면 일하는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주곤 했다. 학생은 널찍한 방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방에는 에어컨도 있었다. 공부하고 있노라면 아까의 아주머니가 먹을 것들을 가져다주곤 했다. 나 말고도 과외 선생이 여럿 있었다. 주요 과목별로 한명씩 과외를 받는 듯했다. 내 수업이 끝나고 다음 과외 선생과 마주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학생은 평범했다. 평범하게 맞추고, 틀렸다. 당연한 듯 졸고, 대수롭지 않게 떠들었다. 학업 성취도가 조금 더 낫기는 했지만, 뛰어난 수준은 아니었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나자 학생의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다음 달부턴 새로운 선생이 올 예정이라고,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며 평소보다 두툼한 봉투를 줬다. 현직 교사에게 과외를 받게 됐단다. 넙죽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아까의 아주머니가 문을 닫았다. 황량할 정도로 넓은 아파트를 벗어나며 생각했다. ‘저 아주머니도 어떤 학생의 어머니겠지’ 이렇게 번 돈으로 자신의 아이를 과외 시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희소병을 앓는 학생도 있었다. 주요 장기 중 하나가 지속해서 악화하는 병이었는데, 진행을 막기 위해 복용하는 약의 부작용이 많았다. 그래서 정서적으로 불안정해 돌발행동을 하는 일이 잦았다. 몇인가의 과외 선생이 일주일을 못 넘기고 그만뒀다고 했다. “학교 교과만 따라가게 해주세요”라고 아이의 어머니가 말했다. 하지만 아이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태였다. 내 말을 듣는 것은 고사하고 수업 내내 고개를 내 반대편으로 돌려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연습장에 피카츄를 그렸다. 그제야 슬금슬금 고개를 돌리더니 배시시 웃었다. 과외는 여섯 달 정도 계속했다. 그동안 수 백 마리의 포켓몬을 그렸다. 덕분에 아이는 나만 보면 싱글벙글 웃었고, 더러 손수 핫초코를 타주기도 했다. “어른이 되면 뭐가 되고 싶어?”하고 묻자 아이는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핫초코엔 아이가 아끼는 마시멜로도 한 덩어리 띄워져 있었다.
그것이 마지막 과외였다. 학교 밖 청소년들이 머무는 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어머니는 돈을 더 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돈이 아쉽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저 마음이 무거웠다. 선생님이 아닌데 선생님으로 불리는 것도, 돈을 받고 입시 경쟁을 부추기는 일에 일조하는 것도, 그렇게 만나게 된 아이에게 마음을 주고, 받는 것도 이제 더는 힘들 정도로 지쳤다. 하지만 요즘도 때때로 마지막 아이를 생각한다. 아이가 앓고 있던 병을 검색해보니 성인이 될 때까지 생존이 어렵다고 했다. 지금쯤 아이는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살아있다면’이라는 가정은 하지 않는다. 과외를 통해 알게 된 세상 속 아이들이 무탈하게 자랐길. 그동안 세상은 좀 더 나아졌길 바랄 뿐이다.
글·그림 김보통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