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어머니께서 아들과 손자에게 추억의 봉숭아 물을 들이고 있다. 현재 모습.(맨 오른쪽 사진)
올해도 여전히 한가위를 잘 치르고 ‘개미가 먹이를 입에 물고 집으로 줄지어 돌아가듯’ 광주광역시에서 서울로 7시간가량을 고군분투 끝에 무사히 귀경에 성공했다. 한 해 두 번 있는 ‘대명절’(설과 한가위)의 마지막 도리를 끝내서인지 마음은 홀가분했다.
보통 명절 때 어머니(72)는 자식들이 내려오기도 전에 음식을 미리 장만해 놓는다. 두 며느리가 먼 길을 내려와 힘들어하면 어쩌나 하는 심정으로 만들어 놓는다고 막내아들인 나에게 살짝 귀띔한 적이 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는 현장을 목도한 셈이다.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대뜸 “봉숭아 물들여줄까” 하고 넌지시 물어본다. 사실 이 나이(43)에 눈곱만큼도 들이고 싶진 않지만, 어머니 기분을 맞춰드리기 위해 새끼손가락 하나 정도는 내어 드리곤 했다. “첫눈 오는 날까지 봉숭아 물이 남아 있으면 소원이 이루어져. 엄마 보고 싶으면 물들인 손을 봐.” 어릴 적부터 어머니께 으레 들었던 얘기다.
사실 이번 한가위는 특별했다. 어머니는 7년 전쯤 담낭에 호두알만 한 담석이 2개씩이나 들어차 있어 개복수술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나쁜 돌’이 ‘나 여기 있소’ 하며 약 올리듯 몸속에서 다시 ‘부활’한 것이다. 명절 직전에 수술을 받았다. 연세가 있어 회복 속도가 더디고, 합병증까지 와 허리를 못 쓰는 처지가 됐다. 오히려 이번 연휴만이라도 힘들어하는 어머니 곁을 지킬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또 다행인 건 늦여름 휴가 때 어머니께서 미리 봉숭아 물을 들여줬다는 것이다. 즉, 첫눈이 오면 어머니 말씀대로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손톱을 절대 깎지 않으리라!)
그 소원 당장 예약해 놔야겠다. ‘어머니, 그거 알아? 소원은…, 내 소원은 창피해 안 할 테니 벌떡 일어나 내년에도 봉숭아 물, 꼭 들여줬으면 좋겠어!’ (병실에 누워있는 그를 그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