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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냉삼’의 중독성

등록 2018-08-08 20:37수정 2018-08-08 22:44

백문영의 먹고 마시기 사랑하기
행진. 백문영 제공.
행진. 백문영 제공.
유난히 습하고 더운 날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몸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고 누군가 말이라도 걸면 “제발 저리 좀 가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마음은 더위에 맥주 거품처럼 부글거렸다. 이런 날씨에 누군가와 만나는 것이야말로 미친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잡아놓은 약속. 취소하는 것조차 귀찮다. 이런 날은 맛있는 것이라도 먹어야 한다. 그런 생각에 향한 곳은 마포구 합정동의 ‘행진’.

올 상반기에 생긴,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냉동 삼겹살집이다. "이런 날까지 야만스럽게 불판 앞에서 고기를 구워야 하느냐"는 일행의 말은 듣지 않았다. 인기가 많아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수고스러움조차 나를 막을 수는 없었다. 80년대 콘셉트의 고깃집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방문할 만했다.

행진은 모든 것이 익숙하고 또 모든 것이 새로웠다. 자리에 앉자마자 작은 주전자에 차가운 보리차를 가득 내어주는 인심부터, 1980~1990년대 유행했던 가요가 흐르는 시끌벅적한 분위기까지. 일부러 낡은 것으로 구해 왔다는 간판 또한 남다르다. 옛날 스타일의 시멘트 바닥은 또 어떻고! 니스 칠을 해 반들반들하게 윤이 나는 갈색 나무 벽조차 익숙하고 신기했다.

이곳의 메뉴는 냉 삼겹살과 돈차돌, 고추장찌개다. 냉동하지 않은 국내산 삼겹살을 매장에서 직접 급속냉동을 한 뒤 얇고 넓적하게 썰어 스테인리스 접시에 담아내는 ‘냉삼’이 인기다. 고기를 주문하면 그 옛날 호프집에서 썼던 유리 접시에 계란말이, 조개젓, 각종 장과 기본 찬이 담겨 나온다.

뜨겁게 달군 불판 위에 냉동 삼겹살을 차례로 올리고 속으로 5초를 센 뒤 뒤집었다. 기름장과 조개젓을 차례로 올려 같이 먹었다. 칼칼하고 개운한, 어쩐지 중독성이 강해 보이는 자극적인 고추장찌개도 입가심했다.

투박하게 보이지만 배려가 넘치는 서비스 역시 매력적이었다. 같이 간 일행의 가방에 기름이 튀지 않도록 앞치마를 직접 덮어주는 서비스를 목격했다.

유난히 덥고 힘든 여름이지만 이런 섬세한 식당을 만날 때마다 즐겁고 신이 난다. 더워도, 추워도 우리는 ‘먹고 살아야’ 하고, 먹는 즐거움은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니까. 한 끼라도 소중하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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