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미아동에 있는 카페 ’어니언’. 백문영 제공
동네를 대변하는 ‘힙’한 카페가 있다. 서울 성수동에 있는 카페 ‘어니언’이 그렇다. 넓고 낡은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이곳은 늘 사람으로 북적인다. 베이커리 겸 카페를 표방한다지만 문화 공간을 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잘 만들어진 공간이다. 예술가와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성수동인 만큼 ‘성수동이니까 어니언 카페도 있는 거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힙’한 동네가 아닌, 강북구 미아동에 ‘어니언’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의아했다. 이 동네에 카페 ‘어니언’이 생긴 지는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이 동네는 방문할 때마다 변화가 눈에 띈다는 점이 놀랍다. ‘어니언’이 생겨 맥도날드, 케이에프시(KFC) 등 패스트푸드 체인점과 술집만 가득하던 유흥가 풍경에 드디어 잔잔하고 여유로운 풍경이 젖어 들어 매우 반가웠다.
성수동의 ‘어니언’ 분점인 이곳은 그곳과 비슷한 듯 다르다. 이곳은 공간이 무척 넓은데 ‘아무것도 없다.’ 카페에 들어서면 콘셉트가 적힌 팻말이 보인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을 빛으로 채우고 해가 제시간을 보내는 것과 나무가 숨 쉬는 모습을 관망하게 하려 한다.’ 이 대목에서 이 카페가 존재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커피를 한 잔 시키고 베이커리 코너를 한 바퀴 돌았다. 점심을 거른 터였다. 어니언은 베이커리 역시 유명하다. 슈거 파우더를 듬뿍 뿌린 ‘판도르(이탈리아에서 성탄절에 먹는 빵의 한 종류)’ 하나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넓은 공간에, 앉을 데라고는 여기뿐이라고?’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넓고, 심지어 공허하기까지 하다. 공간에 익숙해지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곳은 결코 친절하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다.
유난히 해가 긴 여름,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이곳의 진정한 가치를, 매력을 알게 된다. 해가 기울어짐에 따라 바뀌는 공간의 조도, 조도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자까지.
빛이 들면 드는 대로, 찾아오는 손님이 없으면 없는 대로, 의연한 카페의 모습이 새롭기도, 놀랍기도 했다. 들어 드는 빛이, 빛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