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6일 지리산 아래 모인 트바움들. 이정연 기자
모터바이크를 탄다고 하면 항상 편견 섞인 질문들이 쏟아진다. “폭주 뛰니?” “너무 위험한 거 아니야?” “얼마짜린데?” 등등. 일반적인 취미나 이동 수단에 견줘 좋지 않은 선입견이 강한 게 모터바이크다. 이 편견과 선입견에 머무르지 않고 모터바이크가 주는 자유로움을 찾고 느끼는 라이더들이 많다. 성별, 세대를 가리지 않고 모터바이크의 세계에 뛰어든 라이더들을 만나 들어봤다. 당신은 왜 모터바이크를 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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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 글 올리고, 바이크타고, 페미니스트인 사람 누구?!
‘트바움’이 있다. 트위터에서 ‘바이크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 김꽃비가 만든 말이다. 말 그대로 만든 말이다. 트위터를 하고, 모터바이크를 타고, 페미니스트인 사람이다. 트, 바까지는 알겠는데 ‘움’은 뭐냐고? ‘움’(Wom)은 페미니즘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에 나온 말이다. 영어의 ‘맨’(Man)이 남자와 더불어 인간 전체를 내세우는 말인 것을 뒤집어 표현한 단어다. ‘움’은 여성을 뜻하고, 책에선 움이 인간 전체를 뜻한다.
‘트바움’은 동호회도, 단체도 아니다. 그러나 ‘트바움’이라는 말이 트위터에서 통용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트바움이라고 일컫는 이들이 늘어갔다. 바이크를 타는 페미니스트들은 트바움이라는 단어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바이크의 종류, 성적 지향, 성 정체성, 나이, 직업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트바움 박미진(20대. 가명)씨는 “개인이 우선이라는 점이 참 좋다. ‘우리는 하나’라는 식으로 각자의 개성과 정체성을 뭉뚱그리지 않는다. 개인 각자를 존중하고, 그게 가장 매력적이다”고 말했다.
이들이 모이는 곳은 종잡을 수 없다. 온라인 동호인 카페의 ‘정모’는 시간과 장소가 공지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트바움은 그런 게 없다. 서로 얼굴도 모른 채 만나, 금세 친해진다.
김지원(30대. 가명)씨는 “트바움은 너무 드문 존재다. 트위터를 하고, 페미니스트인 사람들은 꽤 있다. 여기다 모터바이크라는 취미까지 공유한 사람들은 정말 만나기 힘들었다. 지인들은 ‘위험하다’는 말만 하고… 그러다 만났으니 얼마나 반갑겠느냐, 쉽게 친해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은 예비 트바움들은 트위터에 ‘트바움’을 검색하면 관련 계정들이 주르륵 뜬다. 이들 계정을 팔로우하고, ‘바이크 타고 싶다’라고 쓰면 더 많은 트바움들이 있었으면 하는 이들이 먼저 관심을 표시할 지 모른다.
지리산의 한 캠핑장에 모여 모토캠핑을 하는 트바움들. 사진 이준현 제공
이렇게 연결된 트바움들 중 몇몇은 결국 2박3일을 함께 보냈다. 지난 5월4~6일까지 전북 남원의 한 캠핑장에 30여명의 트바움이 모였다. 트바움 중 스타워즈 팬들이 “포스데이(5월4일)에 만나는 게 어떨까?”하고 이야기를 꺼낸 데서 시작됐다. ‘포스데이’는 영화 <스타워즈>의 핵심 대사인 ‘메이 더 포스 비 위드 유’(포스가 당신과 함께하길)에서 유래했다.
서너 명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포스바리’(포스데이+바리. ‘바리’는 ‘모터바이크 라이딩’을 일컫는다. 포스데이에 모터바이크를 타자는 의미)는 결국 현실이 됐고, 30명이 넘게 모였다. 캠핑장에서 만난 이명희(20대. 가명)씨는 “트바움들은 어떤 아이디어를 꺼내면 그것을 대부분 현실화한다. 그런 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아는데, 트바움들은 신기할 정도로 생각을 눈 앞의 현실로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모터바이크를 타고 지리산에 모여서 한 일은 대단한 게 아니었다. 숲 냄새를 맡으면서 “좋다!”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비가 와서 가림막 아래로 빽빽이 모여든 이들은 수다 삼매경이었다. 장작불을 바라보던 최영선(가명. 30대)씨는 말한다. “나는 트바움을 만나면서 완전히 바뀌었다고 봐도 된다.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이들을 만나 더 깊게 알게 되고, 알고 싶어졌다. 내 세계가 점차 넓어져가는 느낌이다. 그게 가장 고맙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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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로드 챔피언이 되고 싶은 어린이 라이더
“점프를 할 때 엉덩이를 뒤로 빼고 하면 돼요!”
사진을 먼저 보고 깜짝 놀랐다. 성인이 오프로드(포장되지 않은 험한 길) 모터바이크 경기를 하는 도중에 찍은 사진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사진의 주인공은 신현우(8) 어린이였다. 신현우 어린이가 처음으로 바이크를 탄 건 6살 때부터였다. 자연스럽게 모터바이크를 타게 됐다. 아버지인 신성욱(43)씨가 모터바이크 판매점을 하고, 온로드(포장도로) 모터바이크 레이싱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터다.
모토크로스 대회에서 점프를 하는 신현우(8) 어린이. 사진 윤인상 기자
신현우 어린이는 오프로드 경기의 한 종류인 모터크로스 대회에도 여러 차례 나갔다. 모토크로스 경기장은 여기저기가 움푹 팬 험한 길에 흙을 쌓아 언덕을 만들어 배치해 놓는다. 그래서 넘어지기도 쉽다. “넘어져도 괜찮아요. 별로 안 아팠어요.” 경기나 연습을 할 때 넘어지는 게 무섭지 않느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답했다. 일본 기업 야마하의 피더블유(PW) 50으로 바이크 인생을 시작한 신현우 어린이는 이제 케이티엠(KTM)의 65SX와 혼다 MSX 125F를 탄다. 아직 키가 작아 출발선에 정지해 있을 때 발이 땅에 채 닿지 않는다. “한쪽 다리만 이미 갖다 놓은 의자에 올려 짚으면 돼요.” 126㎝의 작은 키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아들이 넘어지고, 깨지는 게 다반사인 오프로드 모터바이크를 타는 걸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너무 걱정스럽지 않을까? “처음에는 걱정을 진짜 많이 했다. 그렇다고 못 타게 하면 어떻게든 타고 싶어서 위험하게 다니지 않을까 싶어 생각을 바꿨다.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하고, 안전 장비를 철저하게 갖추고 타면 더 낫겠다 싶었다.”
KTM 65SX에 앉아있는 신현우(8) 어린이. 사진 손선미 제공
신현우 어린이는 아직 모터바이크 전문 경기장이나 연습장에서만 탄다. 어려서 자격증을 딸 수 없는데다가 전문 경기장에선 자체 발급하는 면허만 필요할 뿐, 정식 운전면허증이 필요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신현우 어린이는 일요일이면 가족들과 함께 모터바이크를 탄다. 5살인 여동생 신하은 어린이도 최근에 모터바이크에 입문했다. 평일에는 태권도를 배운다. 여느 어린이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벌써부터 꿈이 확실하다. “모터바이크가 더 재미있어요. 음… 일본에 오프로드 챔피언이 있는데, 그 사람처럼 잘 타고 싶어요. 연습을 많이 하면 될 것 같아요.” 언제쯤이면 챔피언이 될 수 있겠냐고 물었다. “20살?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25살에는 될 거예요.” 모터바이크 레이스 챔피언 꿈나무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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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갱년기 치료제, 모터바이크!
배화여자대학교 신계숙(55) 전통조리과 교수는 모터바이크를 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5월 동료 교수가 바이크를 타는 걸 보고 처음으로 바이크에 호기심을 느꼈다. “그러다 갱년기가 왔다” 올해 3월이었다. 후끈 열이 오르고,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잦아졌다. 증상에 괴로워하던 어느 날,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히터를 켜는 순간 동시에 몸에 열이 확 올랐다. “그 순간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뒤로 당장 4군데의 모터바이크 판매점을 돌아다녔다.” 주변 사람들은 “이제 타던 차도 운전 그만해야하는 나이가 되어 가는데 무슨 모터바이크야?”라고 핀잔을 줬다. 그러나 신 교수는 “아, 내 인생이 앞으로 나이 때문에 못하는 게 많아지겠구나. 그러면 하루라도 더 빨리 모터바이크를 타야겠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해서 지난 3월 마련한 모터바이크는 스쿠터(기어 변속이 없는 모터바이크) 베스파 LX 125다. 중국 요리를 전공하고, 개인 요리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어 장을 볼 일이 많다. 그런 그에게 모터바이크는 최고의 이동 수단이다.
스쿠터 시트 앞 공간에 장 바구니를 두고, 취미로 배우는 색소폰의 가방을 맨 신계숙 교수. 이정연 기자
“도로 위에서는 나도 ‘을’이다. 길에서 종종 을과의 대화를 하게 된다. 그 경험이 참 신기하고 좋다”고 말하는 신 교수. 좌회전 깜빡이를 켜둔 채 계속 우측으로 진행하는 신 교수를 보고 퀵서비스 노동자들이 곁에 와 “아, 왜 자꾸 반대로 움직입니까”라고 알려줘 머쓱해하길 수차례였다. “빗길에서는 도로 위에 속도 표시나 정지선 표시 해놓은 부분을 조심해야 한다. 그 위에서 브레이크를 잡으면 미끄러질 수 있다”라는 조언도 길 위에서 들었다. “이런 ‘을’끼리의 대화가 행복하다”는 신 교수다.
신 교수는 모터바이크의 즐거움에 푹 빠져있다. “정신이 청량해졌다. 혼란하고 산만한 마음은 바람 따라 다 날아가 버린 것만 같다. 3년 째 참석하는 색소폰 교실에 갈 때면 등에 색소폰 가방을 착 메고 나선다.” 그는 국내 사정에 모터바이크만한 게 없다고 찬양한다. 신 교수는 “내가 만일 위정자라면 전기 스쿠터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모터바이크를 장려하는 정책을 쓸 것 같다. 괜히 큰 차들 지원금 주는 데 돈을 쓰기보다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당장 그의 교통비는 매달 40만원에서 3분의 1 수준이 13만원으로 확 줄었다.
신 교수는 색소폰 교실, 시장, 찜질방을 갈 때 스쿠터를 타고 나선다. 가끔 저녁 수업이 끝나면 북악스카이웨이를 달리곤 한다. 주로 근거리·시내 라이딩만 했는데, 이번 여름에는 2곳의 목적지를 정했다. 신 교수는 “어머니 산소가 있는 고향 충남 예산 삽교천과 강원도 속초를 스쿠터를 타고 갈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55살 넘어 시작했지만, 스쿠터를 타니 세상 모든 일이 다 용서가 된다. 이렇게나 좋은 걸 많이 탔으면 좋겠다”는 신 교수. 그는 3년 뒤 좀 더 큰 모터바이크를 사리라 마음 먹고 적금을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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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바이크마니아의 외침, 천천히 안전하게 재미있게!
지난 4월 말 전북 전주에서 5번째 ‘흙먼지레이스’가 열렸다. ‘레이스’가 붙어 뭔가 거창해 보지만, 온라인 공간인 ‘올드바이크 매니아’(올바매) 운영진과 회원들이 알뜰살뜰 꾸며가는 작은 모터바이크 행사다. 말 그대로 모터바이크를 탄 라이더들이 일반 도로가 아닌 비포장 도로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경기를 치른다. 경기마다 배기량 제한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달릴 수만 있다면 경기 출전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오래된 바이크들 사이에 선 정득묵씨. 이정연 기자
흙먼지레이스 내내 마이크를 들고 경기 운영을 하느라 목이 쉬어가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올바매의 운영진 정득묵(40)씨다. 그는 ‘천천히, 안전하게, 재미있게(Slow, Safe, Enjoy)’를 내세운다. 모터바이크를 천천히 즐긴다? 속도감을 즐기기 위해 모터바이크를 즐기는 사람이 많은 가운데, 좀 색다르다. 정득묵씨는 “나는 빨리 달릴 때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았다. 모터바이크를 경주하려고 타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마음 먹었다. 재미있게 오래 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온 게 슬로, 세이프, 엔조이다” 정씨가 개인적으로 내세우는 이야기지만, 올바매를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생긴지 올해로 14년째인 올바매는 오래된 모터바이크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여럿 모여든 곳이다.
그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지인들과 함께 ‘개라지’(모터바이크 등을 손보거나 하는 공간)를 꾸려가고 있다. 낡은 모터바이크를 타는 것도 좋아하지만, 탈 수 없을 상태, 이른바 ‘썩(은)차’ 모터바이크를 고치는 것도 좋아하는 정씨다. “살려내는 게 더 재미있다. 예전에는 부품 수급이 너무 어려웠는데, 최근에는 온라인 직구가 쉬워진데다 중국에서 여러 부품들이 나와 오래된 바이크를 고치기가 예전보다 쉬워졌다”고 정씨는 말했다.
전북 전주시에서 열린 5회 흙먼지레이스. 이정연 기자
올드바이크 관련 행사를 기획하고, 개러지를 운영하는 정씨는 이 모든 것을 ‘취미’로만 하고 있다. “흙먼지레이스는 한국에서 모터바이크와 관련한 재미있는 문화가 없다는 게 화가 나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3명이서 ‘올드바이크’ 꾸며서 시합이나 한 번 해보자해서 시작했다. 그런데 1회에 120명이나 왔다. 그만큼 다른 라이더들도 모터바이크를 ‘즐기는 문화’가 고팠던 게 아닌가 싶다.” 올해 흙먼지레이스에는 200명가량이 모여들었다. 정씨의 바람은 딱 하나다. “좋은 모터바이크일 필요도 없다. 배기량, 브랜드 그런 거 따지지 않고, 마음 편하게 와서 재미있고 안전하게 놀다 가는 자리가 됐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그렇게 10회 이상 진행되면 작은 자부심이 생길 것 같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모터바이크 두 바퀴에 엔진을 달아 움직이게 한 이동수단. 사륜차(자동차)보다 작고 연비도 좋지만, 도로 위에서는 무시·위협당하기 다반사다. 그러나 모터바이크 타기에 빠져든 사람들은 헤어 나오질 못함. 여행의 즐거움을 극대화하기도 하는 모터바이크. 모터바이크 웹툰 <로딩>, <100cc>를 그리고 쓴 이지우 작가는 모터바이크 문화 중 ‘모토캠핑’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