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고 싶은 와인이 있는 곳은 음식 가격이 부담스럽고, 저렴한 식당은 당최 와인과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락희옥’은 특이하게 예외다. 이미 주정뱅이(?) 사이에서는 불문율로 여겨질 만큼 인기 있는 곳이다. 최근에야 조금 흔해졌다지만 락희옥이 처음 문을 연 2014년 당시에는 ‘콜키지 프리’(와인 잔 사용료 안 받는 것) 업장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락희옥이 최근 서울 을지로, 용강동에 이어 광화문에 문을 열었다.
한식을 기반으로 하는 주점은 도처에 널렸다. 허름한 ‘주막 스타일’부터 세련된 파인 다이닝(고급 정찬)까지 그 종류도 형태도 다양하다. 그런데 락희옥은 단순한 주점도, 파인 다이닝으로도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자리에 앉으면 ‘아뮈즈부슈’가 일단 상에 놓인다. 싱싱한 알배추와 고추, 오이와 된장이다. 도자기 그릇에 채소들이 요리처럼 나온다. 여느 집과 다른 입맛 돋우는 주전부리만 봐도 단순한 술집이라고 하기엔 어쩐지 어색하다. 보쌈과 차돌박이 구이, 육전과 육회 등 술꾼들의 구미를 잡아끄는 ‘메인 메뉴’가 한가득이지만 된장국수와 김치말이 밥, 성게 알 밥과 같은 식사 메뉴에 눈길이 더 간다. 고깃집이나 술집에서 먹는 그저 그런 쌈장 맛 일색의 된장찌개, 신맛과 단맛 일색의 김치국수가 아니다. 집 된장을 절묘하게 푼 뒤 하늘하늘하게 저민 애호박을 넣고 끓인 된장말이 국수, 사골 육수와 직접 만든 국내산 김치 국물을 ‘블렌딩’해 차갑게 말아 내는 김치말이 밥은 광화문 일대 직장인들의 점심 식사를 책임지는 일등 공신이다. 아직 철이 아니지만 발 빠르게 내놓은 성게 알도 반갑다. 대접 한가득 담은 고봉밥 위 성게 알을 푸짐하게 얹은 성게 알 밥은 맛의 균형이 압도적이다. 밥알이 뭉개지지 않도록 젓가락으로 슥 비벼 한입 뜨면 녹진하고 개운하고 짭조름하다. 가지고 온 리슬링 와인을 아이스버킷에 담가 차가워지기를 기다리며 락희옥의 전설이자 최고 명물 ‘쏘맥’을 주문한다. 이곳만의 ‘황금 비율’로 만든 술이다. 정수리가 오싹하도록 차가운 소맥 원 샷, 된장 찍은 알배추 한입, 마시고 먹었다. 와인바인가? 파인 다이닝인가? 취해서 혼미한 정신에도 이곳의 정체성이 궁금해진다.
여름이 왔다는 것은 해를 통해 안다. 여름은 해가 유난히도 길어서, 조금만 부지런 떨면 햇빛을 맞으며 술을 마시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여름에는 역시 해를 보며 마시는 쪽이 흥겹다.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