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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무즙이 핫도그 만나 폭죽 터뜨렸네!

등록 2018-03-15 10:04수정 2018-03-15 11:59

[ESC]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자파도그’의 핫도그. 백문영 제공
‘자파도그’의 핫도그. 백문영 제공

캐나다 밴쿠버로 가는 비행기 표를 끊은 것은 술김이었다. 퇴사한 지 3개월. 이후의 삶은 생각보다 참혹했다. ‘남들처럼 평범히 직장생활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주위의 시선은 따가웠다.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문득 들었다. 잔고는 비었고 혹독한 겨울 날씨에도 지쳐가던 터, 한도가 남아 있는 신용카드만 믿고 밑도 끝도 없이 가장 빠른 시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골랐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등학교 시절, 하루를 멀다고 붙어 있던 친구가 밴쿠버에 살고 있다. 밴쿠버 다운타운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발길을 재촉한다.

다운타운은 특급 호텔, 백화점, 쇼핑타운, 레스토랑까지 모든 상권이 모여 있는 중심가다. 지나다니는 행인조차 좀체 발견할 수 없는 한적한 도시 밴쿠버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으로도 손꼽힌다. 다운타운에 입성하자마자 ‘이 많은 사람이 대체 어디서 왔나’ 싶은 마음에 입이 떡 벌어진다. “흔하디흔한 햄버거 대신 캐나다만의 명물을 소개해 달라”는 내 부탁에 친구가 이끌고 간 곳은 ‘자파 도그’. 일본을 뜻하는 ‘재팬’에 핫도그의 ‘도그’를 붙여 만든 상호가 귀엽다. “밴쿠버에서 시작해 지금은 캐나다 전역과 미국 뉴욕에까지 지점을 두고 있는 핫도그 전문점”이라는 친구의 설명이 뒤따른다. 이름난 레스토랑이 넘쳐나는 다운타운에서 언제나 길게 늘어선 줄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곳의 대표 메뉴인 ‘데리마요’ 도그와 ‘오로시’ 도그를 고르고 사이드 메뉴로 ‘버터 & 소유’ 프라이를 주문했다. 데리야키, 오코노미야키 등 ‘일본’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음식에서 영감을 받았다. 주문과 동시에 소시지를 굽기 시작해 음식이 손에 도착하는 데 10분 이상 걸린다. 주문하자마자 음식이 나오는 패스트푸드에서 탈피한 모양새에 기대가 커졌다. 그릴 자국이 선명한 빵 사이에 통통한 쇠고기 소시지를 넣고 달콤한 데리야키 소스와 마요네즈를 듬뿍 뿌린 데리마요 도그는 기존의 핫도그와 확연히 달랐다. 듬뿍 뿌린 까맣고 흰 소스 위에 가늘게 채 썬 김 가루를 더해 낯설고 생경했다. 통통한 소시지를 깨물면 뜨거운 육즙이 입안으로 쭉 퍼진다. 입천장을 데고 정신은 아득하다. 이후 휘몰아치는 달콤하고 고소한 소스 맛, 마지막의 은은한 김 향까지. 잘 구운 데리야키와 핫도그를 함께 먹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강판에 곱게 간 무를 소시지 위에 듬뿍 얹고 동그란 쪽파를 송송 뿌린 ‘오로시’ 도그는 또 새롭다. 시원한 무즙을 뿌리고 강판에 곱게 간 무를 한가득 올렸다. 뜨거운 소시지와 차가운 무가 동시에 뒤섞이니 노천탕에 몸을 담근 듯 청량하다. 얼음을 잔뜩 넣은 콜라를 들이켜고 뜨거운 감자튀김에 버터 간장 파우더를 뿌린 ‘프라이’를 씹어 먹었다. 달고 짜고 시원하고 뜨거운 것을 한꺼번에 섭생하니 피로에 곱은 몸이 쭉 펴졌다.

평범한 일본 음식이 핫도그를 만나 특별한 음식이 되고, 익숙한 재료로도 색다른 맛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루한 삶을 반전시키고 싶을 때, 안전한 선택을 하기보다 때로는 ‘미친 척’하고 ‘지르는’ 용기가 필요하다. 익숙한 일만 하며 살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길다. 평범해 보이는 일도 특별하게 여기면 거룩해질 수 있고, 작은 기회를 현명하게 헤아리면 더욱 큰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바다 건너 캐나다에서 깨달았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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