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2018년에는 조금 더 부지런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차분히 앉아 ‘마음’ 고를 곳을 찾다 생각난 곳이 ‘다동커피집’이다. 커피집이 있는 ‘중구 다동’은 평일이면 30~40대 세련된 직장인들이 물결처럼 흘러 다니는 지역이다. 그런 이유로 다동커피집이 요즘 말로 힙(hip. 최신 유행에 밝은)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라가면 ‘세련’과는 거리가 먼, 고풍스러운 인테리어가 펼쳐진다. 안락한 의자,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과 고소한 커피 냄새까지 옛 다방을 방문한 듯 정겹다. 이곳은 한국의 커피 문화를 이끈, ‘커피 1세대’라 불리는 우리커피연구회 이정기 대표가 운영한다. 일반적으로 핸드드립이라 불리는 ‘손흘림’ 커피가 기본 메뉴로, 이곳만의 특별한 비율로 블렌딩한 ‘하우스 스페셜’이 대표 메뉴다. 가장 강한 풍미를 자랑하는 ‘하우스 스페셜 스트롱’을 선택하자 주문과 동시에 커피콩을 갈고 물을 따뜻하게 데우기 시작했다. 섬세한 손길로 천천히 붓는 뜨거운 물에 커피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진다. 서서히 퍼지는 커피 향 덕인지 마음에 차분함이 스민다.
‘홍차 같은 맛과 향이네’ 두런두런 생각하며 갸우뚱하다 한입 마시고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를 내린 뒤 물을 전혀 섞지 않아 진하고 강한 풍미를 내는 일본식 핸드드립 커피에 익숙했던 탓이다. 이곳의 커피에는 충분한 양의 물을 섞어 강하고 쓴 맛과 향은 줄이고 고소하고 깊은 향기만 남겼다. 전형적인 주당의 사고방식으로, ‘위스키에도 물 섞어 마시면 향이 풍부해지니까’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줄어드는 커피가 아쉬워지려는 찰나, 차림표에 적혀 있는 ‘무한 리필’ 문구가 소스라치게 반가웠다. 에스프레소와 손흘림 커피, 어떤 메뉴라도 골고루 맛볼 수 있도록 배려한 섬세한 마음이 고맙다. 막걸리 잔을 닮은 도자기 잔과 따뜻한 커피를 담은 작은 주전자가 함께 나오니 부자가 된 듯 마음이 풍성하다.
바쁜 일상에서 한 발짝만 빠져나오면 이런 풍류를 즐길 수 있다. 분초를 다투던 직장 생활에서 벗어난 순간, 더 좋은 것을 찾아 발품을 파는 여유를 찾았다. 언제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주는 편리함과 안락함도 있다. 하지만 ‘카페인 충전용’으로 아무 생각 없이 늘 마시는 커피 대신, 제대로 시간을 들여 만든 한 잔의 커피가 선사하는 여유는 생각보다 강렬하다.
백문영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