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 안에 있는 커피전문점, 리브레. 백문영 제공
‘힘들다, 힘들다’ 입에 달고 사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주변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도 그만할 때가 됐다. 입버릇처럼 말은 ‘호기롭게’, ‘과감히’라고 하지만 스스로가 호기롭지도, 과감하지도 못한 겁쟁이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안다. 이 성격으로, 올해 들어 가장 호기롭게 한 일이 퇴사 선언이다. 길지도 짧지도 않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직장 생활로 많은 것을 얻었다. 마음이 어지럽거나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 무조건 걷게 된 것은 걷기 좋은 강북에 있는 직장에 다니며 생긴 버릇이다. 회사가 있는 서울 장충동에서부터 명동은 도보로 약 20분 거리로, 아무 생각 없이 걷기에,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들으며 빠르게 걷기에도 적당하다.
유난스레 마음이 무겁던 그날,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점심시간을 틈타 명동으로 갔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건들건들 걷다 명동성당으로 들어갔다. 명동성당은 미사를 볼 수 있는 본당과 서점, 성물 매장, 카페 등으로 구성된 상가동으로 나뉜다. 웅장한 대성당 건물을 향해 숨을 내쉬고 상가동의 ‘커피 리브레’로 들어선다. 커피 리브레는 연남동에서 시작한 작은 카페다. 선별한 커피콩을 매장에서 직접 볶고 갈아 커피를 내려주는 곳이다. 약 5년 전 연남동에 처음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이런 콘셉트의 카페는 드물었다. 게다가 바로 내려주는 커피의 맛도 기가 막히니 순식간에 두터운 팬층이 생겨났다. 한강진역 외딴 골목에 넓은 매장을 열었던 적도 있는데, 이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특별한 곳이다.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등의 기본 커피 메뉴와 약간의 차, 초콜릿 음료가 메뉴의 전부다. 고민할 여지도 없이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 따뜻한 초콜릿 한잔을 주문했다. 오늘의 블렌드 커피는 ‘울서울서울서’. 명동성당에서만 만날 수 있는 원두 블렌딩인데, ‘서울’이라는 지역명에서 모티프를 얻은 이름이 사랑스럽다.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빨대 꽂지 않고 뚜껑을 열어 들이켰다. 기분 좋은 냉기, 그 뒤로 넘어오는 달콤하고 고소한 견과류의 향, 끝에 남는 새콤한 산미까지 제대로 균형 잡힌 한잔이다. 다음으로 얼음으로 차가워진 입을 따끈한 초콜릿 음료로 적셨다. 신사동의 유명 초콜릿 전문점 ‘피아프’(Piaf)의 초콜릿을 사용해 만드는 뜨거운 초콜릿 음료는 진짜 초콜릿을 양껏 녹여 만든 듯 부드럽고 꾸덕꾸덕하다. 두유를 삼키듯 부드럽고 밀도 높은 초콜릿으로 배를 채우고, 단맛으로 도배된 입을 쌉싸래한 커피로 달래다 보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는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든다.
명동에는 칼국수로 유명한 ‘명동교자’도, 곰탕으로 소문난 ‘하동관’도, 돈가스가 일품인 ‘명동돈까스’도 있다. 잊고 있던 옛 친구를 만나듯 언제나 푸근하게 반겨주는 곳이지만 배를 채우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날도 있다. 이런 날이라면 한끼쯤은 건너뛰어도 괜찮다. 커피와 초콜릿 한잔,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한적한 풍경만 있다면 그 자체로 위안이 된다.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