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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강릉에는 바다를 닮은 맥주가 있다

등록 2017-11-09 10:15수정 2017-11-09 11:46

백문영의 먹고 마시기 사랑하기
버드나무 브루어리의 수제 맥주. 백문영 제공
버드나무 브루어리의 수제 맥주. 백문영 제공
시끌시끌한 여름 여행 성수기를 싫어하다 보니 관광객이 거의 없는 가을과 겨울에 주로 바다를 찾는다. 동계올림픽의 도시 평창도 아니고, 한우로 유명한 횡성도 아닌 강릉을 택한 이유는 바다 때문이다. 적어도 한 달, 길면 3개월가량을 누구보다 먼저 라이프스타일 정보를 취재해 알려야 하는 잡지기자는 늘 시간에 쪼들린다. 차분히 앉아서 뭔가를 바라보는 일은 사치에 가깝다. 한 달간의 고된 마감을 마치고 충동적으로 강릉행 버스에 몸을 실은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강릉 맛집’ 같은 정보도 검색하지 않고 무작정 버스에 오른 지 3시간, 강릉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낯선 땅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생경함과 설렘, ‘낮술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스쳤다. 소주는 아직 이른 시간이고, 버스 멀미도 이겨낼 겸 맥주를 마시기로 결정했다. 검색에 돌입한 지 1분이나 지났을까, ‘강릉에 크래프트맥주 브루어리(수제 맥주 양조장)가 있다’는 일행의 외침이 구원처럼 들렸다. 강릉고속버스터미널에서 도보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버드나무 브루어리’다. 인적이 드문 농가만 보여 불안해지려던 찰나, 푸른 잔디밭이 깔린 넓은 정원이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콘크리트벽을 거칠게 뚫어 만든 통유리창, 벽돌을 쌓아 벽을 세운 구조가 모던하다. 동시에 약 40년간 운영하던 강릉 탁주공장을 개조해 만들었기에 고풍스러운 분위기도 남아 있다.

매장과 이어진 정원에 앉아 메뉴판을 정독했다. 처음 방문하는 펍에서는 항상 ‘모든 술을 마셔보고 싶다’는 정복욕이 불타오른다. 버드나무 브루어리에서 생산하는 4종의 맥주를 모두 맛볼 수 있는 ‘버드나무 샘플러’면 이런 고민은 해결된다. 고두밥으로 만든 ‘미노리 세션’, 국화와 산초를 넣은 ‘즈므 블랑’, 솔잎 향 ‘파인 시티 페일 에일’과 오죽헌 대나무에서 영감을 받은 ‘오죽 스타우트’로 구성돼 있다. 안주로는 ‘주문진에서 그날 잡은 생선’을 골랐다. “평범한 ‘피시 & 칩스’겠지”라고 어림짐작한 것이 무색하게 노릇노릇하게 구운 팔뚝만한 삼치가 등장했다. 매일 새벽 주문진에서 어부가 직접 잡은 생선을 받아 어울리는 조리법으로 요리한 메뉴다. 싱싱한 생선 구이와 크래프트 맥주를 함께 맛볼 수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바다의 도시’ 강릉에서 느낄 수 있는 특권 아닌가? 통통하고 짭조름한 삼치 살 한입, 깔끔하고 가벼운 ‘미노리 세션’ 한 모금이면 짜고 쓴 맛이 입에서 함께 어우러진다. 샘플러에서 맛볼 수 없었던 ‘하슬라 아이피에이(IPA)’를 ‘막잔’으로 주문했다. 화려한 열대과일 향, 섬세하게 올라오는 거품이 바닷바람처럼 유난히 청량했다.

“하슬라는 큰 바다라는 뜻이래”라고 속삭이는 일행이 유난히 다정해 보였던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큰 바다만큼이나 여유로워진 마음 탓이었을까. 어느새 지는 해를 바라보며 바다처럼 넓고 담대하게, 차분하고 여유롭게 주어진 일을 해나가야지 다짐했다.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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