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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개성과 재가공, 보석 선택의 기준을 바꾸다

등록 2017-08-17 10:34수정 2017-08-17 11:15

작가들 직접 디자인 한 보석 찾는 이 많아
할머니가 준 보석 재가공해 나만의 보석 만들기
가성비 높은 독특한 보석이 인기
스쿠도 김성리 대표가 블루사파이어를 재가공하기 전 정재환씨 손에 대어 의견을 구하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스쿠도 김성리 대표가 블루사파이어를 재가공하기 전 정재환씨 손에 대어 의견을 구하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보석이라면 ‘큼지막해야 제맛’이라고 여기던 때가 있었다. 반지를 만든 금의 품질은 떨어져도 되나 반지에 박은 보석은 가짜가 용납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1970~80년대가 그랬다. 반면 요즘은 정반대다. 부의 과시가 보석을 선택하는 기준이 아니다. 값싼 모조품이어도 상관없다. 디자인이 세련되고, 자신의 개성을 살릴 수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그동안 집안에 고이 모셔놓았던 보석이나 주얼리를 재가공해 개성과 패션을 살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종로3가 귀금속 매장들을 지나 종묘 인근의 서순라길. 어르신들의 천국처럼 여겨지던 이곳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20~30대 여성들이 찾는 거리로 변모 중이다. 2~3년 전부터 작고 아담한 보석 주얼리숍과 공방이 하나둘씩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종로3가 귀금속 매장들의 제품들이 다이아몬드 등 값비싼 보석을 얹은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이라면 이들 매장의 주력 제품은 값비싼 보석이 아닐뿐더러 작가가 직접 디자인한 제품들이다. 개인이 디자인을 주문할 수도 있으며, 이니셜 등 각인 서비스도 가능하다. 남경주 서울주얼리지원센터 산업지원팀장은 “국내 디자이너 주얼리 브랜드만 160여개에 이른다”며 “주얼리도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패션’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서순라길을 중심으로 작은 보석 공방들이 점점 확산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곳에 있는 ‘스페이스42’(서울주얼리지원센터 2관)에서는 이들 브랜드에 대한 정보와 제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정재환씨가 완성된 블루사파이어 반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정재환씨가 완성된 블루사파이어 반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 세상에 단 1개뿐인…할머니가 주신 반지

지난 9일 서울 종로 순라길에 있는 스쿠도 매장에 정재환(33·직장인)씨가 들어섰다. “반지 다 됐나요?” 긴장된 표정으로 그가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디자인 원하던 대로 잘 나왔어야 하는데….”

이날은 그가 한달 전 맡긴 블루사파이어 반지를 찾는 날이었다. 할머니께서 첫 손주인 그를 위해 30년 넘게 간직했던 반지를 건네준 건 꼭 3년 전 그의 생일날이었다. 당시 할머니는 “손녀나 며느리에게 주려고 했는데, 직접 물려줄 기회조차 없게 될까 두렵다”며 그의 손에 꼬옥 쥐여주셨다. 불행하게도 지난 3년간 이 반지는 그의 책상 서랍 속 깊은 곳에 방치돼 있었다. 불현듯 그 반지가 생각난 건 그즈음 드라마 <주군의 태양>에서 배우 소지섭이 착용한 이니셜 반지를 사러 스쿠도 매장에 들른 것이 계기였다. “아차, 싶었어요. 할머니께서 그동안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생각하니, 큰 죄를 지은 느낌이었죠.”

그다음날 반지 재가공을 맡겼다. 김성리(36) 대표는 “사파이어는 최고급인 데 반해 반지 금속은 형편없었어요. 어떤 성분이 섞였는지 알 수 없는 10K 금이었어요. 예전에는 그런 제품이 다수이긴 했어요.” 14K 백금으로 반지를 제작하기로 하고, 최신 유행하는 경향을 반영해 0.1캐럿 멜리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12개를 활용해 블루사파이어 반지를 장식하기로 했다. “보석의 가격이 개당 1만원이어서 놀랐어요.”

반지는 대만족이었다. 정씨는 “기대 이상”이라며 “너무 아름답다”고 말했다. “재가공의 장점이요? 보석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더 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사실이죠. 100만원의 비용도 전혀 아깝지 않아요. 할머니의 숨결이 담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반지를 얻었으니까 더욱 특별해요.”

그는 이 반지를 고이 간직했다가 미래의 반쪽에게 줄 것이라고 했다.

이재현씨가 하문주얼리에서 문다이 대표와 보석 재가공을 위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사진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이재현씨가 하문주얼리에서 문다이 대표와 보석 재가공을 위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사진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 재가공하는 이유…나만의 디자인이니까

재가공이 가능한 보석들은 어떤 것일까. 정작 보석의 품질이나 등급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얼마나 독창적이면서 취향을 살릴 수 있느냐가 기준이다. 문다이 하문주얼리 대표는 “제품을 사러 오는 분들도 있지만, 우리 디자인을 보고 난 뒤 소장하고 있던 보석을 가져와 세팅을 다시 하고 싶다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현(39·미술학원 원장)씨는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하문주얼리 단골이다. 2016년 1월 오픈 때 우연히 들렀다 디자인에 확 꽂혔다. “20대부터 카르티에, 티파니, 불가리 등 안 해본 제품이 없어요. 지금은 그런 제품은 일부러 안 해요. 10명이 모이면 4명은 티파니, 3명은 카르티에죠. 나름 디자인 전공자인데, 나중엔 제 손이 민망해지더라고요.”

대신 그의 손가락을 차지한 건 얇고 단조로우면서도 독특한 디자인의 반지들이었다. 모두 이곳에서 샀다. 보석이 박혀 있는 반지와 목걸이도 있었는데, 크기가 1㎜ 안팎으로 작다. 그는 “선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볼륨감을 살린 디자인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보석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부의 상징’에서 ‘스타일링 도구’로 바뀐 건 30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남들이랑 다른 것, 오래 질리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이 선택의 우선순위가 됐다. 다이아몬드 대신 큐빅이나 스와로브스키를, 사파이어 대신 토파즈를, 루비 대신 가넷이 박힌 제품을 선호한다. “가격도 훨씬 저렴한데다, 색깔이 천편일률적이지 않아서 좋아요.” 대신 질감과 느낌이 다른 액세서리 여러개를 조합해 화려함을 추구한다. 은으로 된 팔찌를 여러개 겹쳐 착용한다거나 가죽, 실로 된 팔찌를 선호한다. “요즘은 친구들이 저를 만나면 보석과 주얼리를 어디서 구입하냐고 물어봐요. 보석도 평소에 보지 못한 것들인데다 디자인도 독특하니까요. 그럴 땐 뿌듯해요. 비싼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패셔니스타가 될 수 있는 노하우를 알고 있으니까요.”

하문주얼리의 단골이 되면서 그동안 망설였던 보석 재가공도 수시로 맡긴다. 운좋게 그는 엄마와 고모한테 물려받은 보석이 꽤 많다. 여러개의 보석이 박혀 있는 큼지막한 브로치로 목걸이와 반지를 만든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재가공하지 않았으면 여전히 집 어딘가에 방치돼 있었을 것이다. “옷도 시대에 따라 유행이 바뀌듯 액세서리도 마찬가지더라고요. 무엇보다 이곳에 맡기면 보석의 종류에 따라 어떻게 세팅을 해야 적정한지, 제 얘기를 듣고 제 의견을 반영해 줘서 좋아요”라고 말했다.

스핀토는 김서정 대표가 직접 타이 광산에서 구입한 노란빛의 원석들을 깎지 않은 채 모양과 질감을 살려 액세서리를 만든다. 사진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스핀토는 김서정 대표가 직접 타이 광산에서 구입한 노란빛의 원석들을 깎지 않은 채 모양과 질감을 살려 액세서리를 만든다. 사진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 개성 살린 제품 구입해볼까

굳이 재가공이 아니더라도 저렴하면서도 독창적인 소재와 디자인의 제품을 구입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말 그대로 가성비를 따지는 똑똑한 소비다. 지난 10일 서순라길에서 만난 황미숙(48)씨와 그의 딸 양수빈(23)씨가 그런 경우다. 지난 4월 말 에이티(aT)센터에서 열린 ‘인디페어브랜드페어’에서 스핀토라는 주얼리 브랜드를 알게 됐고, 지금은 일부러 그 제품을 사기 위해 공방에 들르곤 한다. 이날도 이들은 여름 분위기에 맞는 보석이 박힌 목걸이와 귀고리를 사기 위해 스핀토에 들렀다고 했다. 황씨는 “인위적으로 모양을 내지 않는 디자인이 딱 내 취향이었다”고 말했다. 양씨는 “보석은 커팅을 하면 나이 들어 보이는데, 여기 제품은 우리 또래 표현대로 하면 ‘츤데레’(거칠면서도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느낌)하다”며 “가격도 저렴해서 학생인 나도 부담이 없다”고 했다.

스핀토의 귀고리는 4만~5만원대, 반지와 목걸이는 10만~15만원 정도다. 김 대표가 직접 타이 광산에서 구입한 노란빛의 원석들을 깎지 않은 채 모양과 질감을 살려 액세서리를 만든다. 비싼 금 대신 은이나 금속, 가죽 등을 활용해 가격을 낮춰 소비자들이 부담 없이 구입하도록 한 것도 강점이다. 김서정 대표는 “보석을 가공할 때 들어가는 커팅 비용이 없어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며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디자인에다 가격까지 저렴하다 보니 가성비를 따지는 젊은층에게 호응이 높다”고 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명품 보석이 비싼 이유

우리나라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의 시장 규모는 6천~7천억원으로 전체 주얼리 시장의 10%를 차지한다. 프랑스의 카르티에와 반클리프 아펠, 미국의 티파니앤코, 이탈리아의 불가리 등이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로 꼽힌다. 이들 회사의 제품은 같은 종류의 원자재로 만든 시중의 일반 주얼리 제품에 비해 가격이 5~10배 높다.

이들 명품 브랜드 주얼리가 비싼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디자인의 우수성 외에 100년 이상 이어온 장인정신, 역사와 전통의 가치를 꼽는다. 이 업체들은 100년 넘게 이어온 오랜 역사와 전통, 장인정신이라는 ‘가치 비용’을 소비자가격에 포함시켰다. 실제 한번 생각해보자. 카르티에 하면 설립자인 보석세공가 루이프랑수아 카르티에의 장인정신이, 1906년 설립된 반클리프 아펠은 자연·문화·판타지를 모티브로 하는 디자인과 특수 세공기법이, 1905년 설립된 불가리의 경우 다양한 원석과 볼륨을 살린 세팅기술 전통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는가. 소비자들은 긴 역사를 관통해서 내려온 브랜드의 가치를 고려해 비용을 지불하는 셈이다.

윤성원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는 “브랜드의 철저한 장인정신과 오랜 시간 장인과 전문가들이 쌓아온 노하우는 경험이 짧은 회사는 결코 모방할 수 없는 필살기”라며 “이들 제품 구입을 통해 얻는 만족감에 대한 비용까지 가격에 책정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나에겐 의미가 있는 보석이지만, 요즘 유행과는 거리가 먼 디자인이라서 장롱 속에 쿡 처박아 뒀다고? 버릴 수도 착용할 수도 없어 대략난감이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재가공(리세팅)을 통해 이들 보석에 새 생명을 불어넣으면 되니까. 일반적으로 보석 및 주얼리 재가공은 종로3가 귀금속 및 전국 1만5천여곳의 금은방 매장에서 가능하다. 비용과 시간은 디자인과 세공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만약, 나만의 취향과 개성을 살린 디자인을 원한다면? 서울주얼리지원센터에서 추천한 쇼룸과 공방을 찾아가보자.

스페이스(space)42

국내 27명의 주얼리 디자이너들의 제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나에게 어울리는 보석 디자인 브랜드를 직접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재가공을 원하는 브랜드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음.(서울 종로구 서순라길 83/일요일 및 월요일 휴무/1670-1420)

놀이터 공방

도도한 고양이 림보가 먼저 반기는 주얼리 공방으로 기능장 출신의 대표가 직접 제작해 세밀하고 정교한 디자인이 강점.(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9길 12/일요일 휴무/02-6080-7979)

필링(FeelRing)

엄마, 할머니의 숨결이 닿은 보석과 귀금속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리폼 전문매장. 머릿속에서 그려왔던 디자인을 직접 주문할 수 있는 일대일 상담 및 맞춤제작 서비스 가능.(서울 종로구 율곡로 10길 25-1/일요일 및 월요일 휴무/070-8842-9102)

마노스킬(MANO-SKILL)

중요무형문화재 제35호 조각장 전수자의 공방으로 남성 주얼리, 커플링 등의 주문 제작만 가능.(서울 종로구 율곡로 10길 29/일요일 및 공휴일 휴무/070-4025-1641)

제미가(JEMIGA)

전통기법을 이용한 장신구, 금속 오브제, 옻칠, 칠보가 유명한 금속공예 공방.(서울 종로구 율곡로 10길 27-14/일요일 휴무)

이누주얼리

보석의 재가공이나 제품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1층의 아틀리에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곳. 예물부터 패션 주얼리까지 다양한 재가공 가능.(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5길 20 다이아몬드빌딩 1층/명절 제외 연중 무휴/02-745-3900)

스쿠도(scudo)

방패와 중세 유럽 문양을 모티브로 한 실버 주얼리 브랜드로 레이저 각인, 시리얼 넘버, 착색 등 맞춤 서비스 가능.(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10길 27-16/토·일요일 및 공휴일 휴무/02-6080-0008)

하문

젊은 디자이너 2명이 고객과 일대일 주문 제작 방식으로 고객의 취향에 맞춰 재가공을 해주는 곳.(서울시 서초구 청두곶길 11 1층/일요일 휴무/02-584-2014)

앤디미온

한 점의 상상화를 그리듯 독특하면서도 개성이 강한 주얼리로 만들어주는 전문 공방.(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29길 14-25 101호/연중 무휴/070-7630-7610)

수미앤주얼리 디어링문

금속공예작가와 주얼리 디자이너가 운영. 작은 왕관과 비슷한 앙증맞은 문양, 하트 모양 등 낭만적이고 쿨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숍.(서울 강남구 선릉로 133길 16/일 및 월요일 휴무/02-545-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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