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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어줘

등록 2017-03-15 20:24수정 2017-03-15 20:48

Let's ESC
독도의 하늘. 조혜정 기자
독도의 하늘. 조혜정 기자
“바람이 많이 불어 내일 배가 못 뜬답니다. 하루 더 있어야겠어요.”

울릉도로 출장 간 이병학 선임기자한테서 지난 6일 급하게 연락이 왔습니다. 원래 7일에 돌아오는 일정인데 날씨 때문에 발이 묶인 겁니다. 3일 강릉~울릉도 정기 여객선이 운항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닦달한 출장이라 죄송스러웠습니다. 월급쟁이들이 흔히 하는 우스개가 “여행 갔다가 배나 비행기가 못 떠 며칠 더 출근 안 하면 좋겠다”는 거죠. 하지만 당장 내일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연장되는 시간이 뭐 그리 즐거울 수 있을까요. 더구나 출장인데 말입니다.

이튿날 오후.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내일도 배가 못 뜬다고요. ‘섬 취재 트라우마’가 생기는 게 아닐까 걱정됐습니다. 한 달 전에도 그는 경남 통영 연화도에 갇혀 이틀 동안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거든요. 큰일이다 싶어 스쿠버 다이빙 투어 때 날씨와 파고, 바람 등을 확인하는 스마트폰 앱 몇 개를 열어봤습니다. 예보에 따르면 최소한 10일은 돼야 배가 뜰 수 있을 것 같았죠. “어떡하죠? 바람 예보가 장난이 아니에요. 내일도 못 나오실 것 같은데…”라는 말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정말 10일이 돼서야 울릉도에서 ‘탈출’했습니다. 그러곤 이런 얘기를 들려주더군요. “울릉도 주민들은 대부분 미국이랑 일본 쪽 날씨예보 앱을 쓰더라고. 배 운항 취소됐다는 소식 듣자마자 앱을 확인한 주민이 ‘며칠 더 있어야 되니 마음 비우라’데. 설마 했는데 그 말이 꼭 맞았지 뭐야.”

작정하고 가기도 힘든 게 울릉도인데 운이 나쁘면 며칠 갇힐 각오까지 해야 하다니, 진짜 섬은 섬인가 봅니다. 저도 몇 차례나 울릉도 여행을 계획했다가 날씨 때문에 포기했었습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오를 수 있다는 독도에도 가봤는데 아직 울릉도는 저한테 마음을 열지 않는군요. 굳이 그렇게 힘들게 울릉도를 가야 하냐고요? 동해 연안과는 색과 온도가 다른 바다, 외딴섬의 정취, 번잡스런 시공간과의 완벽한 단절, 저한테는 이 세 가지 이유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게, 최근 ‘울릉도 이민자’가 생겨나는 이유일 수도 있겠구나, 조심스레 짐작해봅니다.

조혜정 팀장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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