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끈.
한달쯤 전이었나, 바람이 맵찬 날이었다. 빡빡한 마감일정 때문에 식음을 전폐한 ESC팀 동료들을 억지로 이끌고 회사 옆 고개 너머 숙명여대 근처의 쌀국수집을 찾아갔다. 볼과 귀가 빨개지도록 걸어갔건만 남은 자리는 2인용. 우리 일행은 4명. 기다려야 되나, 다른 데로 가야 되나 망설이는데 주인아저씨가 보조식탁을 붙여주겠다고 했다. 원래 식탁보다 키가 조금 낮았지만 다른 선택지보단 나아 보였다.
주인아저씨가 보조식탁과 함께 내준 간이의자에 앉았다. 양지, 차돌, 홍두깨를 고명으로 선택하고 넷이 같이 먹을 스프링롤도 주문했다. 그사이 이정국 기자가 가져다준 따뜻한 재스민차를 후후 불어 두어 모금 마셨다. 식탁 옆 서랍에 들어 있던 수저도 꺼내 각자 자리 앞에 놓아 먹을 준비를 마쳤다. 그러곤 엉덩이를 살짝 들어 의자를 식탁 쪽으로 당기며 고쳐 앉았다.
우지끈, 쿵! 재잘재잘하던, 예닐곱평 남짓한 식당 안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수십개의 눈동자가 모조리 나를 향했다. 나는, 풀 스쾃 자세로 허벅지 앞쪽에 잔뜩 힘을 준 채 엉거주춤, 얼음. 당황스러웠다. 의자가 부서졌다. 심지어 나는 과체중과 비만의 경계에서 힘겹게 줄타기를 하는 ‘덩치 큰 여자’. 나한테 쏠린 시선에 비웃음과 조롱이 섞인 것만 같아 뿅 하고 사라지고만 싶었다.
‘시선의 누명’에서 벗어나려면 내 탓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현장감식을 시작했다. 부러진 곳은 엑스(X)자로 교차된 가느다란 나무다리 중 왼쪽 앞부분. 다른 세 개와 달리 나사가 없었다. 완벽한 증거를 찾아야 했다. 필사적으로 내 주변 바닥을 살폈다. 아아아, 다행히도, 의자에서 빠져나온 나사가 보조식탁 아래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화끈거리던 얼굴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나사를 집어 들곤, “죄송하다”는 주인아저씨를 쳐다봤다. 혐의를 벗었으니 당당하게, 식당 쪽의 이 정도 실수는 문제 삼지 않는 관대한 고객의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여기 나사가 빠졌네요. 조임 부분이 많이 헐거웠나 봐요.” 새로 내준 다른 의자에 앉아 쌀국수에 코를 박았다. 그런데 누구도 공감하지 않는 변명을 늘어놓은 것 같은 이 찜찜함은 뭐지? 어쩐지 의문의 1패를 당한 것 같은 이 기분은 대체 뭐지? 응?
조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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