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수 이문세가 공연에서 팬들에게 나눠준 ‘문세라면’. 박미향 기자
밥줄, 식관(食管), 식계(食系). 밥줄 말고는 의미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단어들이다. 국어사전에 ‘식도’의 비슷한 말로 적혀 있다. ‘인두와 위의 사이에 있는 위창자관의 일부’가 식도의 정의다.
의학서 풀이 같은 국어사전의 이 첫 번째 의미보다 두 번째 정의가 내게는 더 친근하다. ‘식량을 운반하는 길’. 음식기자로서 식도는 위장 다음으로 잘 간수하고 모셔야 할 몸속 기관이다. 코코아가루 대신 콩가루 뿌린 티라미수를 만드는 ‘두레유’의 요리사 유현수씨 솜씨를 판단할 때도, 송어를 김에 올려 흰쌀밥과 먹는 ‘디아이와이(DIY) 김밥’에 도전할 때도 혀보다 중요한 건 식도다. 잘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음식이 들어가는 데만 식도가 필요한 건 아니다. 쿨럭쿨럭 소리 내며 뭔가가 나올 때도 식도의 기능은 요긴하다. 회자되는 나의 술버릇에는 ‘안주 역류’를 할 때의 식도 대처법이 있다. 술집 화장실이나 만취해 도착한 집에서의 역류는 순응하면 된다. 문제는 택시에서다. 위벽을 돈 다음, 식도를 타고 튀어나오는 음식물은 냄새가 고약하다. 그냥 쏟아내는 건 택시기사에게는 참사다. 이때 소심한 나의 식도 대처법이 발동한다. 조심스럽게 가방을 들어 연다. 가방 안에 코와 입을 박고 쏟아낸다. 참사를 막은 내가 대견하다. 그런 날 밤에는 잠자리에서 지구의 중력을 거스르는 식도의 희한한 작용을 곰곰이 생각하곤 했다.
그래도 역시 식도는 맛난 것을 밀어 넣을 때 제 기능을 신나게 한다. 어젯밤에 또 한번 그 진실을 확인하고 뿌듯했다. 적당히 취한 몸을 끌고 부엌 불판 앞에 섰다. 라면봉지를 뜯는데 가수 이문세가 웃으면서 나를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 손에 들린 것은 귀한 ‘문세라면’. 문세라면은 지난해 가수 이문세가 공연장에서 팬서비스 차원에서 나눠준 11만개의 라면 이름이다. 흐뭇하게 웃는 이문세 사진과 그의 감사인사가 봉지에 새겨져 있다. 풀무원의 ‘육개장칼국수’를 포장지만 바꿔서 만들었다.
식도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문세라면을 집어삼켜 쑥쑥 위장으로 내려보냈다. 밤은 깊어가고 기분은 더없이 좋아졌다. 악동뮤지션의 노래 ‘오랜 날 오랜 밤’을 불렀다. 자타공인 음치인 내가 야밤 즐거운 ‘혼공’(혼자공연)을 펼친 것은 모두 식도의 뛰어난 기능 덕분이었다.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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