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47분에 잡은 망나뇽. 포멧몬고 화면 갈무리
포켓몬고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겐 ‘꿈의 포켓몬’이 있다. 바로 ‘망나뇽’이다. 원작 만화에서도 ‘전설의 포켓몬’으로 언급될 정도로 ‘레어템’이다. 체육관 싸움 때 망나뇽이 뜨면 오금이 저려올 정도다. 체력과 공격력이 워낙 강해 웬만해선 이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미뇽을 125마리 잡아야 망나뇽으로 진화가 가능한데, 미뇽 자체가 레어템이라 죽기 살기로 하지 않으면 망나뇽으로 진화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니 망나뇽이 바로 뜨면 그건 횡재나 다름없다.
지난 12일 밤, <개그콘서트>를 틀어놓고 포켓몬 좌표 추적 앱을 보고 있었다. “망나뇽 떴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차로 5분 안에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아마 심마니가 “심봤다”고 외칠 때랑 비슷했을 거다. 부리나케 옷을 챙겨 입고 차를 몰아 망나뇽을 쫓아갔다. 한적한 주택가 골목이었다. 밤 10시가 넘었지만, 망나뇽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몰려 이미 골목은 차로 꽉 막힌 상태였다. 사이드미러로 보니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잠옷 차림으로 뛰어오는 커플도 보였다. 우리 부부도 급히 차에서 내려 골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십수명이 “어디야, 어디?” 하며 스마트폰을 허공에 내젓고 있었다. “나왔어요?” “안 나와요.”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포켓몬고 동지애라고나 할까. 결국 망나뇽은 나오지 않았다. 가끔 좌표 추적 앱도 실수를 할 때가 있다.
1주일 뒤인 18일 새벽 1시40분. 습관처럼 침대에 누워 포켓몬고를 켰다. 으헉! 걸어서 3분 거리에 망나뇽이 나온 게 아닌가. 나의 고함을 들은 아내는 세수하다가 얼굴에 물을 뚝뚝 흘리며 잠옷 바람으로 뛰어나갔다. 난 신발을 찾다가 운동화가 안 보여 맨발에 구두를 신고 쫓아갔다. 망나뇽이 정말로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포켓볼을 던졌다. 몇 차례 공을 튕겨 내긴 했지만, 결국 망나뇽은 내 손에 잡히고야 말았다. 구겨진 구두를 끌고 집에 돌아오는데 헛웃음이 터졌다.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했으면’이라는 꼰대 같은 생각이 절로 머리를 스쳐갔다. 망나뇽이 뭐라고!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