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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먹는 시간

등록 2017-02-15 19:45수정 2017-02-15 20:44

Let's ESC
비주얼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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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새내기 때 ‘이런 게 대학생이지!’ 하고 느꼈던 건 서점에서였습니다. 교재를 사러 갔는지, 소설책을 사러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무튼 어떤 책을 찾으러 서가 안쪽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에 작은 탁자와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대학생들 몇몇이 앉아 책을 읽고 있더군요. 숙제를 하는 건지, 볼펜을 들고 메모지에 책의 내용을 조금씩 베껴 적는 사람도 있었고요. 별것 아닌 그 풍경이 참 신선했습니다. 어쩐지 지적이고 어딘가 멋있어 보이는 그 풍경에 저도 포함된다니, 뿌듯하기까지 했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내내 그 서점은 심심한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약속 장소로, 소설과 잡지와 사회과학책을 사는 곳으로, 그렇게 제 일상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그곳이 한때 대학가에서 명성을 날리던 인문사회과학 서점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졸업한 뒤입니다. 사회과학·동네 서점이 온라인·대형 서점에 밀려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는 기사가 나올 무렵이었죠. 컴퓨터의 회원관리 프로그램에 책 구입금액의 10%를 적립해주거나 토시를 끼고 책을 정리하던 말 없던 주인아저씨가, 제가 좋아하는 소설가 방현석이라는 사실도 그제야 알게 됐습니다. 추억의 장소가 위기를 맞은 게 안타까웠습니다. 진즉에 방 작가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도 못내 속이 상했고요.

이번 주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가 쓴 ‘여행을 떠나요, 유럽의 서점으로’를 읽으며 문득 그 서점이 떠올랐습니다. 그곳도 오래오래 남았다면 어땠을까. 어쩜, 여행지가 되는 서점이라니, 얼마나 그 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으면 그게 될까. 부럽더군요. 서점인지, 성당인지, 박물관인지 헷갈릴 정도로 아름다운 건물과 인테리어는 또 어떻고요.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 끝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동네 서점을 생각하는 그 와중에도 제가 책을 주문한 건 인터넷 서점이지 뭡니까. 이래서 어떤 현상을 판단할 땐 자기 자신부터 살펴봐야 하는 건가 봅니다.

조혜정 팀장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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