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량진수산시장의 ‘영광수산’에서 파는 방어. 박미향 기자
“방어가 히라스라니깐. 제주 어부한테 들었잖아.” “아니라니깐, 방어를 히라스라고 하는 데도 있고, 부시리를 그렇게 부르는 데도 있고, 지역마다 달라.” 한때 제주에서 산 적이 있는 소설가 윤대녕씨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섬 여행 전문가 강제윤씨가 반대의견을 폈다. 지난 18일, ESC 필자 신년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평소 낚시를 즐기고 요리 실력도 수준급인 윤씨는 결코 물러설 기세가 아니었다. 맞붙은 강씨로 말하자면 오랫동안 여러 섬을 여행해, 생선이라면 박사급 ‘선수’다.
불붙은 논쟁에 구경꾼들이 가세했다. 제주 출신인 김양희 기자가 “방어는 방어고, 부시리가 히라스”라고 반박했다. 바닷속에서 방어와 눈맞춤을 예사로 하는 스쿠버다이버 조혜정 기자도 “부시리가 히라스지요”라고 거들었다. 음식기자인 내게 시선이 쏠렸다. “방어와 부시리는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생선이죠. 흔히 방어를 히라스라고도 하잖아요.” 윤씨와 그의 오랜 팬인 내가 같은 편이 된 것이다. 팬으로서 운명 같은 선택이었다. 그와 나, 두 기자, 그리고 강씨로 갈라져 설전이 이어졌다. 강씨가 늦은 밤 전화 걸어 40년 경력의 제주 어부와 경남 통영의 다찌집(통영의 독특한 술집) 주인을 ‘심판’으로 모셨지만 누구도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장장 5시간 넘게 이어진 논쟁의 결론은 ‘국립수산과학원’. 다음날 나의 주요 취재처인 국립수산과학원에 문의해 논쟁에 종지부를 찍기로 했다.
따르릉. 국립수산과학원 연근해자원과 박정호 박사가 전화를 받았다. “어명은 1970년대 출간된 정문기 박사님의 <한국어도보>가 기준입니다. 방어와 부시리는 도감에 언급되어 있는, 사촌 격이지만 다른 생선이고요. <한국수산지>(1908년부터 3년간 우리 바다를 기록한 책)를 보면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방어는 일제강점기 수탈 대상이었습니다. 방어는 일본어로 ‘부리’고, 부시리는 ‘히라마사’인데 히라스는 히라마사에서 유래된 말로 추정됩니다.” 방어와 부시리가 워낙 닮아 둘을 모두 히라스라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어쨌든 부시리가 히라스라는 얘기였다.
기름기 잘잘 흐르는 방어 뱃살에 미끄러지는 기분이었다. 방어 논쟁에 방어만 하다가 음식기자 10년 넘게 쌓은 방어막이 뚫렸다. 방어나 먹으러 가야겠다.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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