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술자리를 워낙 좋아하는 내게 취중 실수는 흔한 일이다. 20여년 전 휴대전화가 없었다는 건 천만다행이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지만, 당시 카메라에 찍혔다면? ‘쩍벌녀’, ‘부침개녀’, ‘맨발녀’, ‘진상녀’…. 인터넷에서 화제의 인물이 되어 시대를 풍미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사고를 친 날은 하필 새 옷을 입었거나, 새 신발을 신었거나, 화장과 머리모양에 유독 신경을 쓴 날이었다. 어차피 인사불성 될 걸 뭐하러 그렇게 꽃단장은 하고 나갔나, 땅을 치고 후회하곤 했다.
그렇게 수많은 ‘웃픈’ 추억 가운데서도, 여전히 오싹한 충격과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이 있다. 8년 전 어느 겨울날이었다. 송년회다 신년회다 저녁 술자리가 유독 많은 시기였다. 퇴근길 바람이 몹시 찼다. 따뜻한 국물이 절실하던 찰나, 회사 앞에서 우연히 고교 동창과 마주쳤다. 저녁 약속 시간까지는 2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앗싸! 간단히 1차 하고 이동하면? 크크.’ 술자리 촉을 절대 놓치지 않는 내가 “막걸리 한잔 할까?” 제안했다. 친구도 흔쾌히 “콜!”을 외쳤다. 부어라~, 마셔라~, 꽤 많은 양의 막걸리가 잔에 채워졌다. 친구들, 짝사랑했던 선생님 등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이 18살 여고생이 된 것처럼 들뜨고 설레었다.
거기서 술자리를 끝냈으면 좋으련만, 친구와 헤어진 나는 기어이 원래 약속이 있던 종로로 ‘2차’를 갔다. 얼큰하게 취해 흥겹고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귀갓길. 운 좋게 택시가 잘 잡혔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애들은 자? 나 지금 집에 가. 30분 후 도착할 거야.” 그다음부터는 필름이 ‘뚝’. 얼마나 지났을까. “손님 다 왔어요.” 택시 운전기사의 말에 눈을 번쩍 떴다. ‘어라~, 우리 집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곳은? 친정집이었다. 그것도 경기도 수원에 있는. 남편에게는 집에 간다고 해놓고, 정작 택시 기사분께는 수원 친정으로 가자고 한 것이다. 고교 동창과 유쾌한 시간을 보낸 그 밤, 내 정체성은 ‘30대 유부녀’가 아닌 ‘여고생 김미영’이었던 것이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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