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처박아 둔 온수매트. 이정국 기자
[ESC] 헐~
우리집은 겨울철에도 보일러를 돌리지 않는다. 가스비 절약 차원도 있지만 일종의 생활 습관이다. 처음엔 너무 추워 집 안에서 오리털 패딩을 입기도 했는데, 살다보니 익숙해졌다. 그래도 견디기 어려운 게 하나 있다. 바로 차디찬 침대다. 막 누웠을 때 뼛속까지 전해오는 냉기. 참다 못해 2년 전 온수매트를 사들였다. 뜨끈하게 등허리를 지지는 온돌 수준은 아니지만, 침대의 냉기를 없애는 용도로는 적절했다. 올해는 한파가 일찍 찾아와 11월 말부터 온수매트를 사용했다.
몇주 전이었다. 술 한잔 걸치고 새벽 한시가 넘어 들어와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꿈을 꾸었다. 한여름, 시원한 냇가에 발을 담그고 탁족을 즐기고 있었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꿈결에 귀를 간지럽혔다.
‘졸졸졸, 졸졸졸.’ 아, 이상했다. 졸졸졸 소리가 진짜로 들리는 게 아닌가. 부리나케 일어나 불을 켜니 방은 ‘한강’이었다. 반려견 호두가 온수매트 배관을 물어뜯은 것이다. 새벽 4시. 우리 부부는 그야말로 새벽별 보기 운동을 했다. 흘러넘친 물을 닦느라 걸레와 마른 수건을 총동원했다. 악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파가 몰아친 지난 주말 한동안 처박아 두었던 온수매트를 다시 꺼냈다. 자세히 보니 개가 물어뜯은 부분만 잘 정리해 이어 붙이면 그럭저럭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구세트를 동원해 수리를 끝냈다. 맥가이버라도 된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호두가 두려웠다. 이번엔 물어뜯지 못하게 아예 의자 위에 온수매트 보일러를 올려놓았다.
“자 오늘부터 따듯하게 자자.” 자리에 누웠다. 새벽에 무심코 눈이 떠졌다. 등이 차가웠다. ‘뭐지.’ 바닥을 보니 또 물바다였다. 또 호두였다. 이번엔 보일러 쪽이 아닌 매트 쪽 배관을 물어뜯었다. 우리 부부는 또 ‘새벽 쌩쇼’를 했다. 매트를 화장실에 처박았다. 그럼 호두는? 화가 치밀었지만, 말 못 하는 반려견을 뭐 어쩌겠나 싶어 꾹~ 참았다.
새벽잠을 설친 탓일까. 아내와 나는 타미플루를 먹고 있다. 유행성 독감이 찾아왔다. 올해, 등 따뜻한 겨울은 없을 듯하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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