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보성의 작은 섬 장도를 소개한 ESC 여행면의 ‘
세월의 윤기 품은 갯벌에 ‘사람’이 산다’를 읽다, 오래전 찾아갔던 섬이 떠올랐습니다. ‘우이도의 추억’이랄까요. 전남 목포에서 3시간 정도 배를 타면 닿을 수 있는, 모래언덕을 품은 섬. 삼풍백화점 사고로 연인을 잃은 남자가, 여자가 남겨놓은 ‘사랑의 흔적’을 좇아 여행하는 <가을로>라는 영화에서 처음 알게 됐죠. ‘섬 안의 사막’이라니, 그때만 해도 감수성이 예민하던 나이라 서정적인 이야기에 어우러진 아름다운 화면에 혹했더랬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시내버스와 시외버스, 택시, 배 등을 갈아타며 어렵게 우이도에 도착했습니다. 숙소도 잡지 않은 채 무작정 걸어서 모래언덕으로 향했습니다. 대중교통 같은 건 없는 섬이니 걷는 수밖에요. ‘소름끼치게 멋진 모래언덕이 기다릴 거야.’ 부푼 기대는 도착 순간, 네, 그렇습니다. 화면은 화면일 뿐이었습니다. 규모도 작고, 제 눈엔 사실 좀, 볼품없었습니다. 더구나 1월이라 여행객도 없을 때니, 휑하기 그지없었지요. 기왕 왔으니 언덕을 오르내리고, 밀가루처럼 고운 모래를 맨발로 밟으며 소설가 윤대녕의 중편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에 나오는 문장들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 나이 때의 허세였죠.
마음에 들었던 건 오히려 그 작은 섬 자체였습니다. 낮은 담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 온 마을에 울려 퍼지는 교회 종소리, 눈이 시린 바다와 그 바다를 품은 초록의 구릉. 슈퍼마켓도 식당도 없는 곳, 어두워지면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곳이었지만 그 작고 조용한 섬의 정취는 몹시도 매력적이었습니다. 번다한 삶에 찌든 뇌를 멈추고, 상처와 욕심으로 출렁이는 마음을 비워내기에 맞춤한 곳이랄까요.
자기연민의 함정에 빠졌다면, 자기정당화의 늪에서 허우적댄다면, 피해의식과 공격성으로 똘똘 뭉쳤다면, 장도든 우이도든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섬은 좋은 약이 될 것 같습니다. 며칠 지내며 바람을 맞다 보면 보이지 않을까요. ‘난 누구인지, 여긴 어디인지.’ 허세도 좀 빠질 테고요. 하긴, 그것도 스스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만 가능한 일이겠지요.
조혜정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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