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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색이, 먹기도 전에 흥분을…

등록 2016-11-30 19:46수정 2016-11-30 20:31

[ESC] 헐~
남대문 수입상가에서 구입한 비아그라 알약.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남대문 수입상가에서 구입한 비아그라 알약.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신 가스?, 콘 가스?” 한동안 이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여행객들의 로망, 페루를 다녀온 후부터였다. ‘신 가스’는 일반 생수를, ‘콘 가스’는 탄산수를 말한다. 페루의 레스토랑에 앉으면 물부터 고르라고 재촉이다.

수도 리마를 떠나 해발 3400m의 하늘 도시, 쿠스코에 도착했을 때 휘이익 어깨를 휘감고 돌아나가는 바람을 만났다. 지구의 배꼽에서 뿜어 나오는 원시의 속삭임이었다. 쿠스코는 잉카의 언어였던 케추아어로 ‘배꼽’이란 뜻이다. 바람이 낮의 주인이라면 밤은 검은색 페인트를 칠한 듯한 까만 하늘에서 일렁거리는 불빛이다. 언덕에 하나둘 켜지는 불빛은 1~2초 간격으로 흔들거렸다. 잉카문명의 주인이 생존해 최면을 거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불빛을 향해 손을 뻗어 한 움큼 모아 주머니에 넣었다. ‘아차차! 미쳤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머리가 아팠다. 드디어 만났다. 고산병. 전날, 이른 아침 아르마스광장을 지나 산페드로 시장에서 단돈 5솔(약 1700원)로 푸짐한 국수를 먹을 때까지만 해도 존재는 미약했다. 하지만 집요하게 들러붙은 고산병은 머리를 둔기로 맞은 듯한 고통을 줬다.

“비아그라 줄까?”

축 처진 나를 본 동행은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는 고산병 치유에 비아그라가 탁월하다며 약장수 같은 말을 늘어놓았다. 고민에 휩싸였다. 뭐든 잘 먹는 맛 기자라고 하나 ‘비아그라까지 먹은 여기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고통은 나의 페루 사랑을 완전히 수장시켰지만 버텼다. 다행히 하루 이틀 지나자 내 몸은 고산병과 친구가 됐다.

귀국해서 ‘참 잘했어’라고 자부했던 나는 요즘 후회한다. 만약 그때 먹었다면 청와대에 들어간 비아그라가 ‘화제’에 오를 때 이러쿵저러쿵 맛 평가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먹어보니까, 음…, 씹는 순간 부서지는 가루가 흰 이를 살짝 감싸다가 폭풍 같은 속도로 식도를 타고 가더니, 음…, 욕망을 툭 건드리는 강렬한 맛이었어”라든가, “강렬한 푸른색이 아작아작 씹어 삼키기도 전에 흥분을 도발하는 감칠맛의 승리자!”라든가. 아니면 “고산병에 효과는 무슨, 혼이 계속 비정상인데. 대통령 혼자 살겠다고 애꿎은 경호원을 팔아”라고 증언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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