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을 가끔 먹는다. 지난주 금요일 한 식당에 들어갔다. 손님은 나 혼자였다. 목을 추켜올려야 볼 수 있는 텔레비전에선 최순실 뉴스가 계속해서 나왔다. 식당 주인은 한숨을 쉬었다. 뉴스 때문인지, 손님이 없어서인지 알 수는 없었다.
문이 열리고 한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60대 정도로 보였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이것들이 나라 망신시키려고 작정을 했어. 있는 말 없는 말 지어내서 박 대통령을 욕보이려고 말이야.”
밥이 가슴에 콱 얹혔다. 내가 이러려고 혼밥을 먹었나, 자괴감이 들었다. 혼이 비정상이 되는 것 같았다. 일단 물 한 모금 마시고 체기를 진정시켰다. 대리처방 의혹 등 뉴스가 이어지자, 그의 목소리가 한층 더 높아졌다.
“최순실이 한 명만 수사하면 되지, 왜 그걸 대통령한테까지 뒤집어씌우는 거야. 에이 쯧쯧.” 빈 식당이 쩌렁쩌렁 울렸다. 더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라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할아버지 이게 최순입니까, 확siri해요?”라고 소리치려고 숟가락을 탁자에 내리치려는 순간, 텔레비전에 “한국 삶의 질 중국보다 낮다”라는 자막이 떴다. 스위스의 경쟁력 평가 기관인 국제경영개발대학원이 한국 삶의 질을 10점 만점에 4.95점으로 평가했는데, 이 점수가 61개 나라 가운데 47위라는 뉴스였다. 그것도 1년 전보다 7계단이나 떨어져서 말이다. 중국은 45위였다.
‘나라 망신’ 운운하던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몇 차례 하더니 입을 닫았다. 식당 주인이 씩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갑갑했던 가슴이 풀렸다. 밥이 꿀맛이었다. 역시 밥이 보약이다.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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