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한겨레> 자료사진
‘다이어트, 다이어트, 다이어트.’
요즘 내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입으로 들어가는 건 모조리 몸에 축적되는 체질이니, 어쩔 수 없는 일. 심지어 물을 마셔도 체중계 눈금이 오른쪽으로 기운다. 내 기준에서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이는 ‘먹어도 살 안 찌는 분’이고, 가장 얄미운 이가 ‘날씬한 분’ 되시겠다. 평생의 소원은 단 하루, 아니 단 한 시간이라도 젓가락 같은 그런 몸매를 가져보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나. 세상에 맛난 음식은 무수히 많고, 의지박약한 나는 절대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니. 내 평생 44는커녕 55 사이즈를 입을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며칠 전 지하철에서 치욕스런(?) 경험을 했다. 하필 그날 박스형 에이치라인 원피스를 입을 게 뭐람! 퇴근길, 평소처럼 지하철을 탔고, 별생각 없이 임산부 배려석 앞에 섰다.(서서 갈 땐 출입구 옆 기둥 쪽이 가장 편하니까.) 임신부가 아닌 내가 목적지인 대림역까지 서서 가는 건 당연했다. 젊은 여인이 마침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유경험자이기에 ‘임신부네, 힘들겠다…’ 동정의 눈빛을 날렸다.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
“어머니, 여기 앉으세요!”
“네? 저요? 저 말이에요? 임신 안 했어요. 서서 가는 게 당연해요.”
한동안 내 눈치를 살피던 여인이 나를 ‘임신부’라고 결론내린 듯하다. 울고 싶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었다면 좋으련만. “아닙니다. 아닙니다.”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며 여인에게 과장된 손사래를 날렸다. 그때의 심정이란 ‘어이없음, 황당, 허망, 자책, 슬픔…’ 차라리 분노가 치밀었다면 좋으련만.
“죄송해요.”
여인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제가 죄송하죠.”(여인은 정말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
너무 무안해 자리를 옮길 요량으로 몸을 돌렸다 화들짝 놀랐다. 헐~. 주변 승객들의 시선이 모조리 내 복부에 꽂혀 있었다. ‘6개월? 7개월?’ 으윽, 내가 봐도 영락없는 임신부! ㅠㅠ 본능적으로 배를 쓰윽 집어넣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혹독한 다이어트로 몸무게를 20㎏ 가까이 줄였는데도, 정녕 ‘똥배’는 어쩔 수 없단 말인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