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테마파크 ‘놀이똥산’의 한 전시품.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나는 선천적으로 ‘장 트러블’이 심하다. 변비와 설사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평생을 살아왔다. 장 트러블로 고생할 때마다 “방귀쟁이 아버지 밑에서 멀쩡한 딸이 나오겠냐”며 부모님을 원망하곤 한다. 하지만 방귀는 애교에 불과하다는 것이 내 지난 고통스런 삶의 결론이다. 전철이나 버스, 심지어 고속버스를 타고 달리다 갑작스레 ‘그분’이 왕림을 하실 때의 난감함이란.
그중 최악은 잠시 이탈리아 로마에 머물렀을 때였다. 로마에 도착한 지 이틀째, 남편과 함께 한인교회 교인들을 따라 그 유명한 ‘산칼리스토 카타콤베’ 관광을 나섰다. 카타콤베는 박해를 받던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의 무덤인데, 10만여명이 묻혀 있어 엄청난 규모다. 게다가 지하 2~3층까지 미로처럼 얽혀 있어 가이드 없이 들어갔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카타콤베에 가기 전 이탈리아 피자와 젤라토, 커피 등을 닥치는 대로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게 화근이었다. 들어간 지 15분 만에 ‘그분’이 오셨음을 느꼈다. 애교 있는 방귀로 시작한 장 트러블은 급기야 ‘곧 쌀 것 같은’ 위기감으로 번졌다. 일행과 2~3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걸으며 남편에게 속삭였다. “남편, 나 똥 쌀 거 같아!” 하지만 카타콤베에 처음 오기로는 매한가지인 상황에서 남편이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얼른 뛰어나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하나 마나 한 말이 전부였다. 사실 이미 나는 너무 급한 나머지 뛸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일생일대의 갈등에 직면했다. ‘이대로 걷다가 똥싸개가 될 것이냐’, ‘어느 동굴에 들어가 실례를 하고 어글리 코리안의 명성을 드높일 것이냐’. 그 짧은 순간 똥싸개와 어글리 코리안 사이를 수십번 오갔다. 그때 갑자기 남편이 나를 둘러업고 그 엄청나게 구불거리는, 끝을 알 수 없는 카타콤베를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지하무덤의 어둠을 헤치고 저 멀리 햇살이 보일 때쯤에서야 나는 현실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다. 대부분의 유럽 화장실이 유료인 것과 달리 카타콤베 화장실이 무료인 것에 감사했다. 1초만 늦었더라면 나는 낯선 이국땅에서 ‘어글리 똥싸개 코리안’이 됐을 터다.
오리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