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어알을 3개월 이상 햇볕과 바람을 쐬면서 말려 만드는 어란. 박미향 기자
4년 전 전남 여수 미식여행 출장길에 겪은 일이다. 새벽 2시. 두두둑! 위층이 몹시 시끄러웠다. 소도시 낡은 여관방의 얇은 벽과 천장에서 들릴 법한 소리와 달랐다. 누군가 괴성을 고래고래 지르고 쿵쾅쿵쾅 뛰어다녔다. 비명도 들렸다. 귀신이라도 나타난 건가.
허름한 여관방, 깊은 어둠 속에서 예상치 못한 소음은 참을성이라면 세계 최고라 자부하는 나조차 분노케 했다. ‘여행을 왔으면 곱게 잘 것이지!’ 이리저리 뒤척일 때마다 나는 침대보의 괴상한 소리까지 짜증이 났다. 왜 요 아래에 비닐을 깐 걸까! 마침 다른 취재차 여수에 와 한방을 썼던 기자 후배는 몹시 고단했는지 그 소리에도 달게 자고 있었다. 하지만 내 인내심은 지구 마그마를 뚫고 대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기자님! 불!” 미식여행의 주최 쪽이 건 전화였다. 그때서야 뽀얀 연기가 눈에 들어왔다. 앞이 깜깜했다. 후배를 흔들어 깨우고, 나도 미친 듯이 여관 밖으로 뒤따라나갔다.
휴우, 살았구나 안도의 한심을 내쉬었다. 대충 걸친 옷, 흐트러진 머리카락, 얼굴에 묻은 그을음, 난민이 따로 없었다. 나보다 먼저 탈출에 성공한 후배가 갑자기 까르륵 웃기 시작했다. “그걸 갖고 내려오느라 늦게 내려오신 거?”
내 손이 어란 세트를 꽉 부여잡고 있었다. 불이 나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날 취재하다 만난 명인의 어란을 신줏단지 모시듯 갖고 내려온 것이다. 후배가 말했다. “잘못했으면 ‘음식기자로서 어란을 지키시려다가 그만 가신…’이라고 추도사 할 뻔했네요.”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말이 있다. 내가 증명할 뻔했다. 직업의식 세계 최고인 나, 칭찬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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