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호선 합정역 방향인 줄 알았던 740번 버스는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노선을 잘못 안 내 불찰이었다. 해는 지고 몸은 지쳐 있었다. 급하게 내리자 작은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커피집이었다. 해 저무는 늦여름, 물먹은 솜처럼 축 처진 내 몸이 잠시 쉴 장소로 적당해 보였다. 위치를 애써 외울 필요는 없었다. ‘다시 오지 않을 거니깐!’ 지나치게 얇고 가벼워 천박하기까지 한 인간관계는 연을 잇지 않는 게 낫다. 이 커피집도 ‘스쳐 지나가는 매우 얇은 관계’였다.
메뉴판은 간단했다. 5가지 커피밖에 없었다. 한 가지를 골랐다. 머금는 순간 묵직했다. 탄탄하면서 물컹한 것이 내 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밀도가 높고 농도가 짙은 탱탱한 푸딩이나 단단한 두부의 식감이 느껴졌다. 이런 걸 ‘풀 바디’(full body)라고 하지! 침샘이 폭발할 것처럼 신맛이 강한 동시에 강배전(커피콩을 오래 볶는 것)과 융드립(플란넬 천으로 만든 주머니에 커피 가루를 넣어 추출하는 법)을 해 매우 진했다. 나는 신맛을 좋아한다. 주로 가벼운 신맛을 즐겨왔다. 그런데 이 무거운 신맛에 푹 빠졌다.
바리스타는 에티오피아산과 케냐산 두 가지 원두를 섞은 커피로, 주인이 개발한 맛이라고 했다. 이름도 주인이 지었다. 마실수록 늘어진 몸이 깨어나고 세포가 일어섰다. 떨칠 수 없는 상상 때문에 몸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나는 물었다. “왜 이름이?” 설명은 길었다. 커피 추출 과정에 관한 것이었다. 들리지 않았다. 커피의 이름은 이랬다. ‘쓰리썸’. 영어사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 3인조 2. 세 명이 함께 하는 성행위’. 커피집 ‘커피 미 업 썸웨어 인 오사카’(Coffee Me Up Somewhere in OSAKA)의 커피 ‘쓰리썸’은 섬세하면서도 강했다. 노트에 주소를 적었다. 잠시 쉴 장소, 스쳐 지나가는 얇은 관계가 ‘깊은 관계’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