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셋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등록 2016-10-05 19:19수정 2016-10-05 19:39

[매거진 esc] 헐~
카페 ‘커피 미 업 썸웨어 인 오사카’의 원두 볶는 과정.
카페 ‘커피 미 업 썸웨어 인 오사카’의 원두 볶는 과정.
지하철 2호선 합정역 방향인 줄 알았던 740번 버스는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노선을 잘못 안 내 불찰이었다. 해는 지고 몸은 지쳐 있었다. 급하게 내리자 작은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커피집이었다. 해 저무는 늦여름, 물먹은 솜처럼 축 처진 내 몸이 잠시 쉴 장소로 적당해 보였다. 위치를 애써 외울 필요는 없었다. ‘다시 오지 않을 거니깐!’ 지나치게 얇고 가벼워 천박하기까지 한 인간관계는 연을 잇지 않는 게 낫다. 이 커피집도 ‘스쳐 지나가는 매우 얇은 관계’였다.

메뉴판은 간단했다. 5가지 커피밖에 없었다. 한 가지를 골랐다. 머금는 순간 묵직했다. 탄탄하면서 물컹한 것이 내 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밀도가 높고 농도가 짙은 탱탱한 푸딩이나 단단한 두부의 식감이 느껴졌다. 이런 걸 ‘풀 바디’(full body)라고 하지! 침샘이 폭발할 것처럼 신맛이 강한 동시에 강배전(커피콩을 오래 볶는 것)과 융드립(플란넬 천으로 만든 주머니에 커피 가루를 넣어 추출하는 법)을 해 매우 진했다. 나는 신맛을 좋아한다. 주로 가벼운 신맛을 즐겨왔다. 그런데 이 무거운 신맛에 푹 빠졌다.

바리스타는 에티오피아산과 케냐산 두 가지 원두를 섞은 커피로, 주인이 개발한 맛이라고 했다. 이름도 주인이 지었다. 마실수록 늘어진 몸이 깨어나고 세포가 일어섰다. 떨칠 수 없는 상상 때문에 몸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나는 물었다. “왜 이름이?” 설명은 길었다. 커피 추출 과정에 관한 것이었다. 들리지 않았다. 커피의 이름은 이랬다. ‘쓰리썸’. 영어사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 3인조 2. 세 명이 함께 하는 성행위’. 커피집 ‘커피 미 업 썸웨어 인 오사카’(Coffee Me Up Somewhere in OSAKA)의 커피 ‘쓰리썸’은 섬세하면서도 강했다. 노트에 주소를 적었다. 잠시 쉴 장소, 스쳐 지나가는 얇은 관계가 ‘깊은 관계’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가파른 통영 지리산 아이도 척척 “아빠! 다음 봉우리로 가보자!” [ESC] 1.

가파른 통영 지리산 아이도 척척 “아빠! 다음 봉우리로 가보자!” [ESC]

모름지기 닭은 튀김보다 건강한 구이가 제맛 [ESC] 2.

모름지기 닭은 튀김보다 건강한 구이가 제맛 [ESC]

호랑이가 무서우면 호랑이보다 빨리 뛰면 되지 [ESC] 3.

호랑이가 무서우면 호랑이보다 빨리 뛰면 되지 [ESC]

프놈펜에 ‘미쉐린 가이드’ 들어오면 ‘별’은 여기에 [ESC] 4.

프놈펜에 ‘미쉐린 가이드’ 들어오면 ‘별’은 여기에 [ESC]

조용한 여행이 대세…남해 보며 새해 용기를 다진다 5.

조용한 여행이 대세…남해 보며 새해 용기를 다진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