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에 놓여 있는 간식거리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나는 술을 퍽 좋아한다. 반주는 기본이고, 낮술·석양주도 즐긴다. 주량이 센 편이기도 하지만, 술자리 자체도 좋아한다. 단, 원칙이 있다. 술자리는 무조건 즐겁고, 신나게! 술 먹고 질질 짜는 사람은 ‘노땡큐’다. ‘내가 기자가 아니면 어땠을까?’ 상상도 하기 싫다. 이 직업을 택한 이유의 8할이, 사람 만나 술 마시는 게 ‘일’이어서인데.
물론 음주 뒤엔 고통이 따른다. 몽롱한 정신, 비틀거리는 육체, 통제 불가능한 배설 욕구, 다음날까지 이어지는 두통과 숙취…. 이건 양호하다. 나의 치명적인 ‘핸디캡’에 비하면. ‘술이 술을 먹는 스타일’인지라, 잠에 취해 버스나 지하철에서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치는 일이 다반사다.
결혼 전 만취한 인사불성의 딸을 항상 따뜻하게 맞아준 건 아버지였다. 아버지도 소싯적엔 약주를 꽤 즐기셨다. 그런 날이면 귀가하는 두 손에 종합선물세트, 알사탕, 센베이 과자가 가득 들려 있었다. 맛있는 과자는 반가웠지만, 그걸 먹으려면 나와 동생들이 감수해야 할 것이 있었다. 아버지의 술버릇이다. 한 말 또 하는 동어반복 말투와 과도한 스킨십. 아버지는 곤히 잠든 나와 동생들을 깨워 껴안고 뽀뽀를 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그 모습이 참 싫었다. ‘아이~, 술냄새~. 절대 나는 안 그럴 거야!’
“당신, 술 먹고 왔으면 곱게 자! 왜 자는 애들을 깨워 울려?” 얼마 전 아침, 남편의 목소리는 앙칼졌다. 아뿔싸! 끊긴 필름 속 어렴풋이 떠오르는 장면들. “사랑하는 딸, 엄마 왔어. 엄마가 널 아주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식탁 위엔 과자, 사탕, 음료수가 담긴 비닐봉투가 놓여 있었다. 헐~. 30년 전 아버지와 똑같은 행동을 하다니. 그것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요즘엔 부쩍 자주. 술버릇도 유전인가? 맞다, 유전.
딸들아, 미안해. 미안해. ㅠㅠ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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