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호라는 디자이너가 있다. 주로 가구를 만든다. 소동호는 어느 날 한지를 둘둘 말기 시작했다. 그렇게 막대기 네 개를 만든 후 세우고, 그 위에 나무 상판을 올렸다. 의자가 됐다. 소동호는 의자에 옻칠을 했다. “소목(小木)은 1년 정도 배웠고, 옻칠은 2년 배웠어요.” 특이한, 요즘 디자이너다.
그리고 어느 날 한지를 접고, 또 접어서 어떤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다. 소동호는 그 안에 전구를 집어넣었다. 조명이 되었다. 이 조명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도민준(김수현)은 조명 아래의 긴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 도민준이 머리 위에서 빛을 내뿜는 ‘별’이 어떻게 만든 조명인지 알았다면 혼자 밥 먹을 때 덜 외롭지 않았을까…. 사람이 손으로 일일이 접어서 만든 조명이니까. 게다가 한지로! 조명을 가까이에서 보면 무늬가 꽤 화려한데, 소란해 보이지가 않는다. 한지 덕분이다. 소동호는 한지를 개척했다.
“그런데 형태를 디자인하는 것은 아니에요. 저는 일단 재료를 생각해요. 이 재료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가 어떤 것일지 찾아나가는 거예요.” 그는 창조한다기보다는 찾아낸다. 그래서 그의 말을 들으면, 창조란 발견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진실은 장막을 거둬내야 드러난다. 오, 그럼 소동호는 재료의 진실을 찾는 건가? 라고 혼자 생각하며 지금 나는 웃고 있다. 좋아하니까. 저 말들, 마음들.
소동호의 웹사이트(sodongho.com)에 접속하면 그가 만든 것들을 볼 수 있다. 잘 찾아보면 커다란 박스로 만든 의자도 있다. 설마 과자 상자로 의자를 만들었겠어? 정말 과자 상자로 만들었다. 종이 상자로도 만들고, 부드러운 플라스틱 소재의 상자로도 만들었다. 이런 재료로 의자를 만들면 안 되는 거야? 라고 되묻듯 아무렇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소동호는 의자라는 어떤 것, 이를테면 의자를 화려하게 보이게 하는 어떤 것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의자’ 자체를 디자인한다. 중요한 것은 의자야, 무엇을 디자인해야 하는지 헷갈리면 안 돼, 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듯이!
한지 둘둘 말아 기둥 만들고
나무 상판 올려 의자 완성
그에게 있어 디자인이란
창조하기보다 찾아내는 작업
“옻칠을 배울 때 작업실 한쪽에 쌓여 있는 그릇들을 보고 생각을 정말 했어요. 팔리지도 앉고 먼지와 섞여 있는 이 그릇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그래서 소동호는 밥공기, 수저, 국그릇으로 조명을 만든다. 이른바, 반상 조명. 이 독특한 조명을 보고 있으면 밥공기와 수저와 국그릇으로 우리가 왜 그동안 밥만 먹었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물건 혹은 재료의 용도를 새로 정의한다. 그에게 무엇은 무엇이 아니라, 무엇이 아닌 무엇이다.
밥공기, 국그릇, 수저 등으로 만든 조명.
스튜디오 소동호 누리집 갈무리
가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소동호의 작업을 주목한다. 그의 작품 혹은 제품에서 한국의 전통 공예적인 특성이 감지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자신도 “저의 정체성과 전통 공예의 특성이 만나서 한국적인 공예의 형상이 발견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제가 하려고 하는 것이에요”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내가 볼 때 그가 디자인한 것들은 꽤 ‘모던’하다. 그러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는 전통 공예의 방식으로 다분히 현대적인 감각의 작품들을 만들고 있다. 이 지점이 독특한 것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온전히 자신의 방식으로 사유하기 때문이지. 수년 전부터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는 ‘북유럽 스타일’ 같은 거에 시선이 꽂혀 있었다면 절대 그렇게 못했겠지. 오히려 그는 일주일에 4~5일간 충남 부여에 머물며 무형문화재 소병진 선생에게 전통 소목을 배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생각할 때 디자이너가 보여줘야 할 것은 작품이나 제품만이 아니다. 그가 무엇으로 어떤 작품을 어떻게 만드는가도 보여주어야 한다. 나는 그것이 디자이너의 책무라고 믿는다. 디자이너는 한 시대의 번뜩이는 재능, 창의력의 대표 선수니까. 그러므로 그가 디자이너라면 칫솔이든 인공위성이든 디자인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디자이너는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물건의 형상을 찾아가는 긴 여정을 기록하는 사람이니까.
소동호의 작업실은 서울 을지로에 있다. 중구청의 지원을 받아 입주했다. 그래서 중구청과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그중 하나로 버스정류장을 디자인하고 있다. “을지로에는 특화 산업이 몇 개 있어요. 타일과 도기, 조명 등인데, 을지로3가에 있는 버스정류장을 새로 디자인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곳이 타일·도기 거리라서, 그걸 상징적으로 표현해야 해요.” 그런데 재미있는 고민이 생겼다. “버스정류장의 의자를 변기, 세면대, 욕조 등으로 만들어달라고 해서요. 디자이너 입장에선 너무 직접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 직접적이네. 도대체 어떻게 만들까? 중구청에선 3월까지 마무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지금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결과가 마음에 들면 따로 초대할게요.” 소동호가 말했다. 초대 안 해도 가서 볼 거다. 소동호가 디자인하는 버스정류장이니까.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니까. 그가 만든 작품뿐만 아니라 그가 사유하는 방식을 신뢰하니까. 그러니까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도, 봄에 버스정류장을 보러 을지로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요? 정말 변기가 의자가 됐을지 확인해보아요.
게다가 요즘 을지로가 새삼 ‘핫’한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을지로는 콘텐츠가 많은 곳이에요. 산업 재료도 팔고, 맛집도 있죠. 골목마다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져요. 이곳에 작업실을 열면서 더 자세히 알게 됐어요. 그래서 요즘 지도를 만드는 프로젝트도 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지도를 보고 을지로의 멋진 곳을 투어할 수 있도록 하려고요. 이것도 중구청과 함께 하는 거예요.” 이쪽 골목에선 철을 자르고, 저쪽 골목에선 전구를 팔고, 또 저쪽 골목에선 타일을 파는 을지로에서 소동호는 지도를 만들고 있다. 나는 당연히 그 지도를 갖고 싶다. 그런데 내가 더 갖고 싶은 지도는 소동호가 걸어갈, 그 낯선 길이 그려져 있는 지도다. 박수쳐주고 싶다.
이우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