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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단적이면 안되나요? 나만의 시각, 글이 중요하죠”

등록 2016-02-03 20:15수정 2016-02-04 10:28

차현진 작가. 사진 차현진 작가 제공
차현진 작가. 사진 차현진 작가 제공
[매거진 esc] 이우성의 좋아서 하는 인터뷰
예능방송·웹드라마 작가이자 <내겐 아직, 연애가 필요해> 글쓴이 차현진
어떤 사람이 있다. 여자다. 예쁜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꽤 오랫동안 예능 방송 작가였다. “오디션 예능 <위대한 탄생>을 할 때는 에릭 남의 매니저였고, 피겨 예능 <키스 앤 크라이>를 할 때는 크리스탈의 피겨맘이었고, <1박2일>을 할 땐 여행사 직원 같았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매 순간 눈부시고 매 순간 잊지 못해요. 그걸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면, 카메라 뒤에서 벌어지는 뜻밖의 드라마를 보는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나는 그녀의 말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언어란… 나 따위가 이야기할 만큼 간단한 도구는 아니지만, 한 인간의 축적된 인식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인식은 사유나 사고와 비슷한 단어인데, 막연히 나에겐 보다 개별적인 단어로 다가온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인식이란, 내 것이다. 나는 이 예능 작가의 언어를 듣거나 읽을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인식이 흥미로웠다. 좋으냐고? 그건 모르겠다.

“배우들이 맡은 배역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되듯이, 예능 작가도 프로그램에 따라 다른 삶을 사는 거 같아요.” 겨울과 겨울 사이의 그 영원히 낯선 바람 속에서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나보다 한 걸음 앞서 걸었다. 곧 두 걸음 앞서고, 세 걸음 앞서고, 멀어졌다. 서둘러서 그녀를 따라잡지는 않았다. 멀리서 보니 그녀는 나무 같았다. 그런데 내가 그녀에게 갖는 신뢰를 한 문장으로 적으면 이런 것이다. 나무와 나무들의 미세한 차이를 그녀는 알 것 같다.

이기적인 마음이 정점 닿을 때
개성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이 맛도 챙기고 저 맛도 챙기다
뭔 맛인지 모를 요리 누가 먹나요?

그래서 나는 그녀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은 사랑에 대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는 웹드라마 <연애세포> 시즌 1과 시즌 2의 대본을 썼다. 1분도 그것을 본 적이 없고, 시즌 3가 나와도 안 볼 거지만, 그녀가 독특한 사랑의 감정을 발견하고 표현했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하지 않는다. “저는 눈물을 컨트롤 못해요. 어떻게 하면 울지 않을까 늘 고민해요. 이런 거 속성 과외 어디서 안 하나요? 아, 맞다, 같이 받아야 하지 않아요? 자주 우시던데. 아니 다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눈물을 참고 사는 겁니까?” 그녀의 감수성, 예민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녀는, 언제나 조금 다르다. 이를테면 이런 감정이다. 나는 그녀와 나란히 걷는 것보다 뒷모습을 보며 걷는 게 좋다. 어떤 사람은 ‘얌체공’같이 팔딱팔딱 뛰고, 또 어떤 사람은 갑자기 멈춰서 주룩 눈물을 떨어뜨리겠지만, 그녀는 울면서도 뛰고, 가만히 웃으며 감정을 추스를 것 같다. 무엇보다 그녀는 뒤따라오는 사람과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가끔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이 잘 오고 있는지 몰래 쳐다보고는, 안 그랬다는 듯 태연히 앞을 보며 걸을 것 같다. 나는 그 뒷모습이 좋다.

나 역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언제나 그녀의 정서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궁금했다. 남의 연애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고, 연애에 대해 쓴 에세이 역시 절대 읽고 싶지 않지만 최근에 그녀가 출간한 <내겐 아직, 연애가 필요해>는 읽었다. 집으로 보내줬기 때문이기도 한데, 보통은 저자가 사인을 해서 보내는데, 이 책은 아무리 찾아봐도 사인이 없었다. 부끄러웠나, 사인하기가…. 꼭 그래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스윽 스윽 읽을 참이었다.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그저 감정을 소비하는 행동이니까. 그렇게 위로받는 거겠지만, 나는 그런 위로는 안 받고 싶으니까. 하지만 몇몇 이야기는 꼼꼼히 읽었다. 그녀의 시선이 너무 독단적이어서. 이래도 되나 싶어서.

그녀는 자신이 만난 8명의 남자에 대한 인식을 적었다. 어떤 일이 있었고, 그것이 무슨 의미였을지 썼다. 그들은 모두 이별한 사람들이다. 이별을 적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텐데, 이 만남은 이런 것이었을까, 저 만남은 무엇이었을까, 자문한다.

특히 이 문장이 좋았다. ‘그가 차근차근 설명한다. 저렇게 자신의 마음을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편할까?’ 자신은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인가? 그래서 글을 쓰는 걸까? 그녀는 말했다. “우린 한 사람의 연애 따위 읽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누군가 무심코 한 말이 어딘가에서 자신의 삶을 살다 소멸하기 직전에 내 앞으로 와 마지막으로 내는 소리 같았다. 사람들은 답을 찾고 싶어 한다. 사랑에 대해. 사랑의 난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숱한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정답을 늘어놓는다. 거짓말이다. 사랑은 해결되지 않는다. “스스로 자기 방식대로 찾는 거예요.” 그녀는 사전처럼 정확하게 말했다.

<내겐 아직, 연애가 필요해>는 자기 방식대로, 불안하고 기쁘게 때론 슬프게 주룩주룩 울며, 한 여자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를 기록한 책이다. ‘내겐 아직’이라고 적고, 쉼표를 그려 넣어야 하는 여자가 쓴 책이다. 감정을 예쁘게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았고, 사랑의 피해자이거나 가해자인 자신을 숨기지도 않았다. ‘모든’, 정말 ‘모든’ 감정들이 독단적이다. 그녀의 정서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나는 이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독단적이면 안 되는 거예요? 저는 이기적인 마음이 정점에 닿을 때 개성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이 맛도 챙기고 저 맛도 챙기고, 결국 무슨 맛인지 모르는 요리를 누가 먹어요?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각과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 내겐 중요했어요. 익명이지만, 8명의 남자들이 당황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저를 이해할 거라는 믿음도 있었죠.” 나는 반문했다. “하지만 당신의 인식을 확신할 수 있어요? 그 남자들이 이해한다고 해도, 당신이 그리는 그 남자들의 모습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녀는 대답했다. “내 판단이 옳은지는 나도 몰라요.” 그녀가 모른다고 말해서 나는 이 모든 게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안 믿으니까. 누가 저 나무의 색깔을 알겠어. 빛이 모든 걸 바꿔버리는데. “이런 게 나라고 끝까지 밀어붙였어요. 경험의 본질은 결국 ‘개인의 해석’이잖아요.” 그리고 나무처럼 그녀도 성장했을 것 같았다.

언젠가 그녀는 나에게 신춘문예에 시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등단을 하겠다고. 지금 못하면 예순 살이 되기 전까지는 해보겠다고. 그래서 그녀는 나를 ‘선배’라고 부른다. 그녀는 새 예능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박완서 선생님이 골방에서의 글쓰기보다 자기 자리에서의 체험이 더 소중하다고 말씀하신 걸 들은 적이 있어요.” 글을 쓰려고, 글을 쓰면서 살려고, 그녀는 숲 속으로 계속 걸어가는 중이었다. 이름은 차현진이다.

이우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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