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건.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매거진 esc] 이우성의 좋아서 하는 인터뷰
건축비평 책 <건축사건> 쓴 이종건…“사람들이 너무 쉽게 잊어 사건 붙잡아두는 글 쓴다”
건축비평 책 <건축사건> 쓴 이종건…“사람들이 너무 쉽게 잊어 사건 붙잡아두는 글 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불합리한 사건들의 정직한 기록
우리나라 병폐 낱낱이 드러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위한 건축적 접근, 이 구태의연!’이란 글에서는 1차 아이디어 공모에 선정된 안들을 모두 비판했다. 세계적인 미술관이 어떤 시행착오를 거쳤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고, 21세기 첨단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방안이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그리고 글을 가만히 읽다 보면 그가 겨냥하고 있는 실체는, 그 공모를 심사한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공모는 2차 심사 때 심사위원이 바뀌었다. 절차상 문제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의심하고 싶지 않다. 어떤 일이 어떤 곳에서 일어났을 리 없다. 주어는 없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일상적으로 반복되어온 일일 것이다. 하지만 궁금하다. 비정상적인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면, 그것은 정상적인 일일까? “어찌 됐건 세월은 흘러갑니다. 허허허.” 이종건은 말하고 웃었다. 나도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는데 못했다. “저는 다만 건축이 미래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나는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항상 이 시대에 대해 분노해왔지만 사실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잘 몰랐다. 나는 논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감정의 이면을 읽는다. 내가 악을 쓰고 소리 지를 때 그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것이 왜 벌어지고 있는지 쓴다. 그러나 이것조차 내가 그를 만나려고 했던 이유는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내가 그를 안쓰럽게 여긴 이유였다. 건축계 안의 사람들이 이종건을 좋아할 이유는 이 책 어디를 뒤져봐도 없기 때문이다. “왜 만날 비판만 하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죠. 좋은 말은 하나도 할 줄 모른다고. 하지만 저는 외부 시선과 외부 발언에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에게 정직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시니컬’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저 자신은 그렇다고 생각 안 해요. 그저 삶이 그렇다고 생각해요. 의도적으로 시니컬하게 글을 쓰려고 한 적이 없어요. 삶이 쓸쓸하고 비극적이고 슬픈 거죠. 지금 이 삶 자체가 냉소를 통해서만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어요. 허허허.” 그는 왜 자꾸 웃는가? 나는 그 웃음이 웃기지 않았다. 나는 그 웃음에 담긴 허무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끝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숱한, 그저 웃어넘길 수밖에 없는, 도무지 뭐라고… 부연할 수 없는 사건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만나고 싶었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비판한다. 그런 글을 쓴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가장 묻고 싶은 것은, 아니, 그에게 궁금한 단 한 가지는, 왜 계속 글을 쓰는가이다. 결국 삶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그는 간단하게 말했다. “첨예한 의식만은 붙잡아둘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썼습니다.” 그렇게 쓴 책이 <건축사건>이다. 책 광고 맞다. 한 명이라도 더 읽었으면, 읽어주었으면 해서. 그는 서문에 적었다. ‘우리는 기억보다 망각에 능하다. 탓을 사건의 시대라는 시대적 특성에 물어야 할지, 일제 잔재 청산부터 얼버무린 민족성에 물어야 할지, 살아내기 팍팍한 삶의 환경에 물어야 할지 모르겠다. 탓이 어디에 있든 망각에 능하니, 사건을 붙잡아두는 글은 무조건 소중하다.’ 그는 비판의 칼을 ‘우리’를 향해서도 슬그머니 내리칠 기세다. 이 책은 단순한 건축비평 모음집이 아니다. 동시대의 불합리한 사건들에 대한 정직한 기록이다. 누군가는 끝까지 감추고 싶었을 이야기다. 그러니까 한편으론 이 책을 안 읽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 이 책은 공허한 울림도 되지 못한다. ‘그들’이 듣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말도. ‘우리’의 비명도. 그리고 ‘우리’는 곧 망각할 것이다. 나는 이것이 참혹하다. 내가 글을 편파적으로 쓰고 있다는 건 안다. 그러나 나는 망각하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어른이라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왜 지금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가라고. 날이 제법 추운데 이종건은 얇은 니트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옷이 너무 얇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춥지 않다고 말했다. 아직 견딜 만한 날씨라고 그는 말했다. 그래, 견디시라, 부디 그러시라, 마음속으로 나는 말했다. 부디, 모두, 그러시라, 견디시라, 그리고 잊지 마시라고 마음속으로 나는 ‘우리’에게 말했다. 감히 위로가 될까 하고. 이우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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