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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김인배, 그는 몸에서 어떻게 조각작품을 꺼냈나

등록 2015-10-07 19:32수정 2015-10-08 15:08

김인배. 사진 김인배 제공
김인배. 사진 김인배 제공
[매거진 esc] 이우성의 좋아서 하는 인터뷰
변화와 새로움이 정말 싫은 조각가 김인배
“변화보다 어려운 건 완벽하게 멈추는 것”
“변화라는 게 시간을 전제로 하는 개념인데 사실 저는 그런 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변해야 한다는, 자기 자신을 갱신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존재다. “저는 갱신하기 싫어요. 작품을 만들 때마다, 전시를 준비할 때마다 새로워지는 것도 싫어요. 그건 변화한다기보다, 변한 걸 그저 보여주는 걸 수도 있어요.” 뭘까? 이 배신당한 느낌. 그런데 통쾌하고 응원해주고 싶은 느낌.

김인배는 말랐다. 키도 크지 않았다. 175㎝쯤 되나. 나는 김인배가 만든 조각 작품들이 김인배의 몸속에서 하나씩 꺼내지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김인배가 직접 몸을 열고 작품들을 꺼내고 다시 몸을 닫는 것이다. 말이 안 된다. 그냥 시인으로서의 느낌이다(잊고 계셨던 분들에게 다시 알려드립니다. 저 시인이에요).

김인배는 조각가다. 78년생이다. 나는 그를 만나고 싶었다. 정확하게 적자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몸이 엄청나게 클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몸속에 조각 작품들이 들어 있으니까. 나는 그런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조각가다. 굳이 다시 적는 건 그가 드로잉, 즉 연필로 그리기 때문이다. 어디에? 종이에 그린다. 벽에도 그린다. 조각 작품에도 그린다. 그리다가 빚는다. 빚다가 그린다. 그의 조각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연필로 그린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는 낯선 것들을 붙여 놓은 것 같은 조각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무엇인가 생략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눈, 코, 입. 눈, 코, 입이 없으면 사람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잖아? 그럼 뭐지? 생략하자 상상의 문이 열렸다. 나는 이 지점의 김인배를 붙잡고 있다. 김인배의 작품을 통해 나의 시를 발견하고 싶은 것이다.

아라리오뮤지엄 제주가 운영하는 ‘동문모텔 Ⅱ’라는 공간에서 김인배, 록밴드 ‘앵클어택’, 아티스트 그룹 ‘좋겠다 프로젝트’의 협업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젊은 에너지가 느껴진다. 비행기를 탔다. 덩치 큰 김인배를 만나려고. 그의 몸속에 조각 작품들이 출렁이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그런데 김인배가 작았던 것이다. 마르고, 아니 심지어 가냘프고, 파마를 해서 예뻐 보이기까지 했다. 조금도 안 우락부락한 김인배라니.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원래 김인배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김인배 작가시죠?” ‘동문모텔 Ⅱ’ 1층 카페는 개방형이어서 바깥의 소음이 마구 밀려들어왔다. 김인배는 작고 느리게 말했다. 나는 정말로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가 몸을 열어 작품을 꺼내고
다시 닫는 모습을 상상했다.
사람 같지만 아닐 수도 있는 조각

“시간이 없다면 그 무엇도 없지만
모든 게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변화보다 어려운 건 완벽하게 멈추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어서 그는 무엇인가 더 이야기했다. 안 들렸다. 하지만 그와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나중에 집으로 돌아와서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 나는 몇 개를 더 물었다. 나는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를테면 이런 답변이다. “시간과 나와 모든 것이 함께 완벽하게 멈추는 것. 어렵지만 그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원인도 결과도 없는 것, 논리도 없고, 그 무엇도 없지만 모든 게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을 ‘배제’한다는 의미일까? 그는 어렴풋하게 흩어지는 안개 같다. 그리고 나는 안개를 보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안개 너머를 보아야지.

그날 김인배의 작품을 오래 보았다. 다음날도 가서 보았다. 김인배의 작품은 ‘동문모텔 Ⅱ’ 4층 전체와 5층의 작은 방에(이곳은 과거에 정말 모텔이었으므로) 전시돼 있다. 4층엔 두 개의 조각이 전시돼 있다. 동일한 형태의 상반신 조각이다. 사람인 것처럼 보이나 아닐 수도 있다. 얼굴이 뾰족하니까. 눈, 코, 입, 귀가 없으니까. 하나의 얼굴엔 점 하나에서 시작되는 수많은 선들을 그렸다. 물론 연필로. 다른 하나의 얼굴은 온통 까맣게 칠했다. 당연히 연필로. 의심할 바 없이 김인배의 작품이다. 이번 전시명은 <묵음>이다. 그에게 묵음은 소리이자 형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그가 스스로 쌓아온 작품의 맥락 안에서 느리고 명확하게, 마치 정지돼 있는 것처럼, 그래서 하나의 장면을 잇는 다른 하나의 장면처럼,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를 구성하는 지점을 의심하고 파괴하고 재조합하는 게 제 작품의 일부를 이룰 거예요.” 어렵다, 역시. “저는 시야를 좁히려고 노력합니다. 바로 전의 것과 지금 하는 것이 비슷한가, 다른가 정도만 봅니다. 그러면서 만들 수 있는 것은 호흡? 리듬?일 거예요. 큰 그림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미끼라고 생각해요.” 그는 자신이 혹은 자신의 작품이 예측되는 것, 미루어 짐작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5층의 작은 방엔 알루미늄 와이어를 구부려 만든 작품이 걸려 있다. 얼굴의 윤곽들이다. “5층 작품은 만들어진 형상이나 재료, 구성 방식이 글과 같다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드로잉도 글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읽어야 하지요. 구성 요소도 단순하지만 읽어야 합니다. 느끼긴 하지만 읽어야 해요.” 5층으로 다시 올라갔다. 읽어보려고. 얼굴은 옆모습 같기도 하고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 같기도 하고, 보는 사람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얼굴도 조금씩 변했다. 걷다 보면 얼굴 속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만약 몸 전체를 만들었다면 김인배의 몸속으로 들어갈 뻔했다.

나는 안다. 김인배의 조각들이 왜 그의 몸속에서 꺼낸 것 같다고 느꼈는지. 하지만 설명을 못하겠다. 설명을 하지 않으면 신문 기사가 되지 않는다. 나는 바로 이 지점 때문에 동시대 언론이 현대 미술을 왜곡한다고 생각한다. ‘동문모텔 Ⅱ’ 2층과 3층 그리고 5층의 대부분은 그의 친구이자 동료 예술가인 앵클어택, 좋겠다 프로젝트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앵클어택이 곡을 만들고 연주하는 과정을 자주 가서 지켜봤어요. 좋겠다 프로젝트가 어떤 작품을 만들고 있는지도 잘 알았어요. 전시는 이미 시작됐고,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끝났지만, 어우러지는 과정,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에요. 저에게는요.” 작가에게 이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라고 해야 할까? 그걸 설명하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나는 여전히 김인배가 자신의 몸속에서 조각 작품을 꺼냈을 거라고 믿는다. 그는 너무 말랐다. 하지만 그의 몸은 그의 세계이고, 그 세계는 넓거나 좁거나 아득하거나 선명할 것이다. 나는 그의 조각 작품들이 그의 자아를 이루는 숱한 일부들일 거라고 믿는다. 발음하지 않아도 들리거나 보이는 소리가 있다. 그것을 묵음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까?

이우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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