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와서 고기국수 한 그릇을 먹으려 했더니, 대기 줄이 국숫발만큼 길다. 알음알이로 현지인 따라가서 먹던 시절이 아니다. 비행기 타고 내려와서 바로 고기국숫집으로 간다고들 한다.
제주에서 해물 요리는 본디 사 먹는 음식이 드물었다. 고등어조림이니 하는 것들도 기실 육지의 관습을 따른 음식이다. 그래서 제주에선 고기 들어간 음식이 전통적이다. 시장에 가서 순댓국 먹어봐야 제주의 맛을 이해할 수 있다. 지금도 ‘큰일’(경조사)에는 돼지 잡는 일이 핵심이다. 농한기에는 ‘돗추렴’이라고 하여 돼지를 잡아 나누는 관습도 일부 남아 있을 정도다. 돼지고기를 유달리 좋아하는 제주 사람들은 국수조차도 돼지육수를 쓴다.
머리와 어깨살을 푹 고아 국물을 내고 면을 말아낸다. 갈비라고 쓰면 당연히 돼지갈비요, 고기라면 돼지고기인 줄 알아야 하는 지역답다. 돼지는 국물의 밀도가 두껍게 나온다.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국물에 하얀 면발이 깊이 잠겨 있다. 국수를 젓가락으로 집고, 고깃점을 함께 밀어 넣으면 목으로 울려오는 국수 먹는 ‘통증’이 짜릿하다. 흔히 제주 국수를 ‘터프’하다고 하는데, 바로 그 맛이다.
특히 이 지역은 소면보다는 중면이다. 투박한 제주의 맛에 더 어울린다. 마트에 가서 국수를 골라보면, 1949년에 설립했다는 ‘연동국수’가 전통적인 방식대로 종이에 말려서 진열되어 있다. 밀가루야 다 수입이고, 소금 넣고 반죽해서 밀어내는 게 마른국수일 텐데 다 맛이 다르다.
예전에는 동네 국수가게가 있어서 성업했다. 무게를 달아 파는데, 근이나 관으로 썼다. 두 근, 반 관…. 믿지 못하시겠지만 반관의 국수를 사면 필자의 온 가족이 한 끼에 다 먹었다. 2㎏ 가까운 국수를 여섯 식구가 다 먹어치워 버린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밥은 공깃밥이지만, 국수는 수북하게 담아 먹어야 양이 찬다.
연동국수 하나를 사 들고 길을 나선다. 이번에는 밀면이다. 밀면은 이름부터 특이하다. 메밀 대신 밀가루를 쓴다고 하여 부산지역에서 이름 붙었다. 본디 제주의 것은 아니지만, 산방산 아래 한 밀면집이 크게 성공했다. 한적한 마을이 외지 사람들로 번잡해졌다. 몇 해 만에 들러 보니, 곁들이로 주던 편육도 이제는 사라졌다. 막 삶아 썰어주던 편육도 시켜 먹어야 한다. 그러려니 하지만 아쉬운 일이다. 소주를 시키면 무심하듯 작은 접시에 담아 툭 내주던 공짜 편육 맛이 좋았는데 말이다. 대기표를 받아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국수는 누구나 좋아하고, 값도 싸서 만만한 음식인 까닭이다. 특이하게도 이 밀면집도 국수 굵기는 당연히 중면이다. 그래서 부산에서 먹는 밀면과 제법은 유사한데도 먹는 맛이 다르다. 제주다운 투박함이 더 살아 있다. 꿋꿋하게 젓가락으로 말아서 후루룩, 입에 넣었다. 꽉 찬다. 통쾌하고, 그득하다. 고기국수 먹듯이 서너 점 얹어 나오는 편육 조각을 함께 먹어야 더 맛있다. 지역의 소주 한 잔을 붓는다.
본디 조선 사람들은 술자리가 시작되면 먼저 국수를 안주로 술을 먹었다는 기록이 많다. 선주후면(先酒後麵)이라는 냉면집의 ‘법도’도 일제강점기 일본식 메밀국숫집의 유행을 따라 생겨났을 가능성이 높다. 하여튼 국수 안주에 술은 각별한 맛이다. 옛 선조들의 주도를 따라가 본다.
박찬일 요리사·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