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 안현민. 사진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셰프 안현민의 2015년 프로젝트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세계 배낭여행을 2년 동안 하고 돌아온 외삼촌은 어린 내 귀에 솔깃한 얘기를 많이 해줬다. 그중 일식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니 한식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므로 준비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조언을 잊을 수 없었다. 국외에서 나만의 한식을 하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목표는 외국에서 미슐랭가이드 별점을 받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지난 몇년은 미슐랭 별점을 받지는 못했지만 17년이란 긴 호텔 조리사 생활에서 벗어나 중국에서 한식당을 열어 막연하기만 했던 그 목표에 좀더 다가간 시간이었다. 베이징 한식당 오픈 당시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내가 기술이 있는데 뭐!’였다. 나에게는 기술이 있으니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술을 전수해준 중국인 직원은 2년 이상 근무했는데도 맛의 균형을 못 잡고 오락가락했다. 기술로만은 안 되는 현실이 있음을 배웠다. 한식을 만드는 데 재료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중국 땅이니 한식에 걸맞은 식재료를 제때 수급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베이징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한식에 관한 편견도 생각보다 단단하다. 대표 한식으로 인식된, 조리가 비교적 단순한 고기구이가 아닌 고급 한식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한국 가서 많은 후배들과 함께 더 다양한 한식을 개발하고 만들고 싶어졌다. 충분히 훈련된 인력과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이 융합된 한식을 가지고 홍콩에 가서 고급 한식당을 열면 미슐랭가이드 별점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은 나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해 제주도에서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베이징에서 레스토랑 ‘쌈’을 여는 데 도움을 주신 분이 “제주에서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해왔다. 2015년, 내 꿈인 한식 파인 다이닝(정찬)을 펼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올해 나의 계획은 이 기회를 잘 살려 국외에 수출해도 손색없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제대로 여는 것이다. 예상보다 행운이 일찍 찾아와 어리둥절하지만 이런 행운이 계속된다면 홍콩 진출은 더 빨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벌써 머릿속에는 나의 제주 한식레스토랑이 영화 필름처럼 돌아간다. 양념을 많이 넣기보다는 제철 식재료의 천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고, 2가지 정도의 세트메뉴로 최고의 질을 구사할 생각이다. 한국 음식에는 역시 한국 전통주이기에 전통주를 음식과 잘 조화되도록 할 거다. 외국 손님들을 위해 적절한 와인 목록도 물론 준비한다. 코스가 길어지면 손님들의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으니 적절한 퍼포먼스를 코스 사이에 끼워 넣을 요량이다. 그러기 위해서 저녁에는 10~16명 정도만 예약을 받을 거다. 꿈의 한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그 레스토랑의 가명은 ‘랩 디엔에이’(LAB DNA)다. 한식의 디엔에이를 풀어보고 연구한다는 의미다.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이 랩 디엔에이의 보금자리다. 한식을 콘텐츠로 풀어보고 연구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초청강연도 할 예정이다. 외국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면서 나부터 더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일할 후배들도 한식만 잘 만드는 셰프가 아니라 문화로서 한식을 널리 알리는 인재가 되었으면 한다. 베이징에서 기반을 잡았으니 제주도로 오는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은 그리 어렵진 않을 것이다. 그동안 중국에서 익힌 노하우로 제주에서 모은 인재들과 함께 중국을 공략할 계획도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언제쯤 목표에 다가설 수 있을까 아득했는데 목표에 한 발짝 다가갔다는 것만으로도 2015년은 두근거린다. 레스토랑 오픈과 관련한 몇 가지 문제점들이 벌써 나의 ‘달콤한 2015년’에 살짝 딴지를 걸고 있지만 문제없다. 잘 해결할 거다. 어려움을 해결하고 맛보는 열매가 더 달다.
안현민 ‘원 포트 바이 쌈’의 오너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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