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민(사진)은 올해 나를 당황하게 한 인물이다. 나는 그를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알았다. 그는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어지럽혔다. 나는 이 나라의 정치 따위에 관심을 갖고 싶지 않은데, 그는 계속 그것들을 상기시켰다. 그는 예술가고, 어찌됐건 요즘은 노골적인 작품을 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얼굴을 팝아트 작품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별이 새겨진 체 게바라의 모자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씌운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너스레를 떤다. “박근혜 대통령이 요즘 최고 스타잖아요. 그래서 별을 그렸어요.”
초겨울, 토요일 낮,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요즘 어린 작가들은 무서워. 잠복해 있다가 뒤통수를 친다니까.” 뒷담화는 아니었다. 그는 세대론, 적어도 세대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했다. “나는 엑스(X)세대예요. ‘소비자’라는 단어가 비로소 등장한 시대였어요. 386세대하고는 달랐어요.” 언젯적 엑스세대야. 나는 요즘 어린 친구들 눈에는 엑스세대나, 386이나 다 ‘꼰대’로 보인다고 말했다. 무식한 말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러자 그는 엑스세대와 386의 차이를 한참 설명했고, 나는 열심히 듣는 척을 했다. 나도 그를 ‘꼰대’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한 마디 때문에 나는 그를 존중하게 되었다. “386세대와는 다른 언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386세대는 어쩔 수 없이 화염병을 던졌다. 강영민은 엑스세대다.
그는 1세대 팝아티스트였다. ‘하트’는 그의 상징이었다. 세련된 반복, 선명한 색들의 조화, 단순하고 긍정적인 이미지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는 모더니스트였다. 과격하지 않고, 친근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눈에 안 보이는 웜홀을 찾아” 열었고 “매트릭스가 진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파이어니어’ 즉 개척자였다고 말한다. “이제 다른 웜홀을 열어야지요. 박근혜 정부 5년 동안은 이렇게 그릴 거예요.” 그래서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을까? “아니에요. 정치가 아니라, 역사예요, 역사!”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큰 머리를 보았다.
“제가 왜 모르겠어요? 정치 얘기, 특히 유신 시대에 대해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싫어해요. 저는 지사도 아니고 열사도 아니에요. 그저 금기에 이끌리는 사람이에요.” 그는 노트북을 열고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한 장 가리켰다. 그가 서 있고 양쪽에 젊은 여자와 남자가 서 있다. 그리고 나무가 한 그루 심어져 있다. 나무에 태극기가 묶여 있고. “무궁화 식수 퍼포먼스였어요. ‘일베’ 회원이랑 같이 무궁화나무를 심었어요. 누가 진정한 애국 보수인지 붙어보자, 는 마음이었어요.” 작년에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를 붉은색으로 베껴 쓴 작품을 전시했다.
“뛰어난 예술가는 마케터예요. 형성된 시장에 진입하는 마케터가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마케터예요. 한국 근현대사는 써먹을 게 굉장히 많은 역사예요. 저는 그 역사를 다루며 손맛을 느끼고 있어요. 굉장히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저는.” 그는 마약을 하듯, ‘역사’라는 금기를 탐닉하고 있다. 정치적 성향을 물었을 때 “예술가”라고 답했다.
강영민은 최근 ‘지리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50명의 작가들이 동참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 생명과 평화 등과 같은 테마로 진행되었다. 강영민은 농협 창고에 벽화를 그렸다. 커다란 하트가 웃고 있고 평화를 상징하는 마크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무궁화가 함께 그려져 있다. “무궁화를 빼고, 더 세련된 방식으로 정치와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어때요?” “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죠. 저는 이미 그걸 다 했어요.” 그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나는 그에게서 뛰어난 마케터로서의 면목을 느낀다. 그는 승부사다. 새로운 웜홀을 찾는다는 점에서(아, 왜 <인터스텔라>가 떠오르지?), 금기에 다가간다는 점에서, 그는 존중받을 만하다. 그런데 예술가로서의 진정성은… 모르겠다. 마주하기 힘든 현실과 투쟁하는 것은 그의 일이 아닐까? 나는 왜 강영민을 만나고 싶었을까? 하지만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386세대와는 다른 언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라는 말 속에 진정성은 충분히 있다. 우리가 만난 카페의 이름은 ‘무대륙’이다.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나야 할 것 같다. 확인해야 한다. 그의 ‘웜홀’을.
이우성 시인